국내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률 추이. 자료=한국금융연구원
국내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률 추이. 자료=한국금융연구원

[이코리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소상공인·자영업자·중소기업 등에게 실시한 대출 만기 연장 및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가 다음 달 말 종료될 예정이다. 정부가 추가 연장을 결정해 당장 위기를 넘길 수도 있지만, 만약을 대비해 은행들이 충당금을 추가 적립해 위기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코로나19 금융지원 실적’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지원책의 일환으로 만기연장·상환유예한 소상공인·중소기읍 대출 원리금은 약 139.4조원(1월 말 기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정책금융기관과 제2금융권까지 더하면 코로나19 금융지원 실적은 약 272.2조원에 달하는데, 이 중 만기연장이 258.2조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원금상환 유예는 13.8조원, 이자상환 유예는 2354억원이었다. 

금융위원회는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3월말 종료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지난 8일 해명자료를 내고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의) 종료시점까지의 코로나19 방역상황 진행, 금융권 건전성 모니터링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치의 종료·연장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언제까지고 연장할 수는 없는 만큼, 자칫 코로나19 금융지원이 부실 대출로 이어질 위험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금융사, 특히 은행이 충당금을 추가 적립해 손실흡수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금융지주사가 지난해 적립한 충당금이 오히려 전년보다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지난해 적립한 신용손실 충당금 전입액은 3조2398억원으로 2020년(4조653억원) 대비 8255억원(-20.3%)이나 줄어들었다. 경기회복 전망으로 인해 부도율이 하락하면서 필요한 충당금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은행으로 한정하면 손실흡수능력이 강화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대손충당금 잔액은 7조45억원으로 전년(6조8592억원) 보다 소폭 증가했다.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대비 대손충당금 적립률 또한 지난해 9월말 기준 156.7%로 2020년 3월말(110.6%) 대비 50.7%p 높아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또한 코로나19 금융지원으로 인한 착시현상에 가깝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에 대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로 인하 부실채권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면서 적립률도 상승했다는 것. 실제 부실채권이 아닌 총여신 대비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같은 기간 0.86%에서 0.8%로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2021년부터는 대손충당금 적립 속도가 대출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3일 발표한 ‘코로나19 감염병 지속 상황에서 국내 은행의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위한 정책방향’에서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대출에 대해 2020년 4월부터 전체 금융권이 만기연장, 원리금 상환유예 등의 지원을 해주고 있다”며 “이러한 지원정책은 부실의 현재화를 연기해 줌으로써 자산건전성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줄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국내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높게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만약 코로나19 금융지원 조치가 종료될 경우 금융권 전체에 부실채권으로 인한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6일 금융위에 대출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추가 연장해달라는 요청을 전달했다. 만기연장 조치가 종료될 경우 대부분의 업종에서 한계기업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은행이 최대한 보수적인 기준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적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위원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 등의)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화된 부실채권을 기준으로 산출된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은행의 손실흡수능력에 대한 불충분한 지표”라며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를 지원한 대출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피해업체에 지원한 신규 대출 등 전체 대출에 대해 부실화 여부를 선제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금융사의 충당금 추가 적립을 유도할 방침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4일 발표한 올해 업무계획에서 “코로나19 장기화 및 취약차주 상환유예 종료 등에 따른 건전성 악화 가능성에 대비하여 금융회사의 충분한 충당금 적립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금융지주사 입장에서는 충당금을 추가 적립할 경우 배당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해 주요 금융그룹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해 주주들의 배당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에서, 충당금 추가 적립으로 인해 배당을 축소할 경우 주주들의 반발은 물론 주가 하락까지 예상되기 때문. 금융사들이 잠재적 부실대출 위험을 고려해 충당금을 추가 적립하며 위기대응 역량을 강화할지, 코로나19로 인해 축소된 배당성향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지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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