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일본관광청 유튜브채널 갈무리
출처=일본관광청 유튜브채널 갈무리

[이코리아]수십 년 동안의 정체된 임금, 디플레이션, 아베노믹스가 남긴 일본의 그늘이자 현주소다. 

12일 일본 금융회사인 무샤리서치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41개국 중 일본이 4번째로 초봉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디즈니랜드 입점이 가장 저렴하며, 일본의 빅맥 가격은 신흥국 가격과 대등한 것으로 조사됐다. 

30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쌌던 나라치고는 놀라운 하락세다. 어쩌다 일본이 이처럼 ‘값싼’ 나라가 된 걸까.

닛케이 금융전문기자인 나카후지 레이가 쓴 책인 ‘값싼 일본’은 지난해 3월 출간된 이래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은 일부 물가를 신흥국 수준으로 떨어뜨릴 정도로 여러 가지 인플레이션 대책이 실패한 현재의 일본을 암울하게 그리고 있다.

나카후지는 책을 통해 “일본이 관광에 의존하는 가난한 국가가 되는 과정에 있다”면서 “이 나라의 젊고 똑똑한 사람들이 더 나은 임금과 근무 조건을 갖춘 더 나은 직업을 찾아 일본을 떠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이이치 생명 연구소의 수석 경제학자 토시히로 나가하마는 책에서 “단순히 말해서, 일본의 오랜 디플레이션은 기업들이 가격을 떠넘기는 메커니즘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기업이 돈을 벌 수 없고,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면 임금이 오를 수 없고, 임금이 오르지 못하면 소비가 늘어나지 않고, 결과적으로 물가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런 식으로 일본의 구매력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일본 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맞춰 조정된 실질 임금은 지난 30년 동안 대부분 하락했으며, 실질적으로는 20년 전과 거의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즉, 거시적 차원에서 일본은 물가뿐 아니라 인적자원 측면에서도 '값싼' 국가가 되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학 졸업생들의 초봉이 형편없이 낮으며, 현재의 인력 부족을 악화시키는 두뇌 유출에 직면했다고 책은 지적했다. 

일본의 초봉이 개발도상국과 비슷해지고 있다. 출처=무샤리서치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윌리스타워스왓슨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전 세계 대학 졸업생들의 기본 연봉을 조사한 결과, 미국은 평균 629만 엔, 독일은 531만 엔, 프랑스는 369만 엔, 한국은 286만 엔으로 나타났다. 일본 대졸자 초봉은 262만 엔으로 114개국 중 4번째로 낮았다.

또 이같은 장기불황은 일본의 고용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017년 비정규직 현황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 5,460만 명 가운데 37.3%에 달하는 2,036만 명이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임금노동자 10명 중 4명은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으로, 1980년대 일본 노동력의 15%에서 현재 거의 40%로 증가했다.

정규직 근로자는 일반적으로 시간당 2,500 엔을 벌지만 임시직 근로자는 시간당 1,660 엔, 파트타임 근로자는 시간당 1,050 엔만 받는다. 비정규직은 회사 건강보험이나 정규직의 특전을 거의 받지 못한다. 

아베노믹스의 산물인 엔저의 초장기화도 일본 경제의 침체의 한 축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엔달러 환율은 115엔대로, 엔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120엔대까지 더 떨어질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엔저가 장기추세다 보니 기업 수익이 해외자산화되고, 이러다보니 일본 내 임금은 오르지 않게 된다. 그 사이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홍콩 아주시보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중국 국유 CITIC그룹이 일본 중소기업 14곳을 인수해 이들의 기술과 인력을 흡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국경을 초월한 자본 흐름일 뿐만 아니라 두뇌 유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아주시보는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마이니치신문 사설에서 '20년 안에 일본인들이 일하기 위해 중국으로 이주할 것'이라고 썼다”면서 “10년 전이라면 그 발언은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문화 수출품 중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제작하는 애니메이터들의 임금은 형편없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애니메이터·감독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54.7%가 연 400만 엔 이하를 벌고 있으며, 중소기업 젊은 애니메이터의 경우 월 9만 엔을 버는 일이 드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낮은 임금과 과중한 업무량에 염증을 느낀 인력은 노동의 질이 향상되고 있는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으로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고 아주시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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