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소도시의 밤,  Oil on Canvas, 130*97cm
박용진, 소도시의 밤, Oil on Canvas, 130*97cm

 

일부러 한두 정거장 앞에 내린다네.
몇 번 왔었지만 영안실 가는 길은 

매번 낯설어
지나가는 노인에게 물으면 
친절하게 가리켜주네.

부의를 부의함에 넣고
방명록에 이름을 쓰네.
대부분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고인의 영정에 절하고
덤덤한 상주와 맞절도 하네.

영안실에서나 만나는
데면데면한 몇몇 친구들, 합석해도
자작自酌의 술을 입속에 털어 넣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건강을 묻고
싱거운 대화가 오갈 뿐이네.

어떤 이는 더 큰 소리로 
어떤 이는 불콰한 얼굴로
어떤 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므으로
저마다의 취기를 달래는데,

영안실 어두운 뜰
봄꽃은 봄날이 가기 전에 진다네.

죽은 사람은 자기 죽음을 알지 못합니다. 죽었기 때문이지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도 산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죽음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은 죽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죽은 사람과 관련된 산 사람의 문제입니다. 울고 통곡하고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만이 죽음에서 제외됩니다. 죽음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것도 사실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어 죽음을 대면한 이 세상 사람들이지요.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는 것도 살아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겁니다. 죽은 사람과 화해하고 죽은 사람을 용서하고 그리워하는 일, 모두가 살아있는 사람의 몫입니다. 

부고를 받고 영안실을 찾을 때 죽은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죽은 사람과 관련된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영안실에서 ‘호상’이니 상주에게 슬퍼 말라고 하지만 죽음을 떠나보내는 상주에게도 영안실을 찾은 모든 사람에도 언젠간 죽음에 도달합니다. 살아있음 속에는 죽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죽음은 오로지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어떤 이는 더 큰 소리로 / 어떤 이는 불콰한 얼굴로 / 어떤 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므으로 / 저마다의 취기를 달래’면서 잠시 죽음을 잊거나 떠올리겠지요.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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