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응답 기준 게임 내 성희롱, 성차별 피해 유형 비중. /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2021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

[이코리아] 최근 게임들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채팅 문화가 여전하다. 게임업체들은 필터링이나 모니터링으로 적발하는 데 한계에 부딪혔음에도 별다른 대책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달 출시된 게임 A의 한 서버 채팅 화면에는 24일 욕설과 성희롱이 담긴 문장이 올라왔다. 불건전한 문구에 대한 필터링이 적용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의미 없는 숫자나 특수문자를 글자 사이에 섞어 쉽게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B의 경우 국내외 이용자간 비하·차별·혐오 발언을 채팅 화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자동 번역 시스템이 탑재돼 서로 언어가 달라도 이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 게 가능했다.

게임 시장에는 A·B를 갈음해 채팅 문화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게임이 넘친다. 해당 문제는 온라인게임 역사가 시작된 1990년대부터 계속됐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9월 발간한 ‘2021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0~65세 게임 이용자 2139명 중 26.6%는 게임상에서 성희롱 또는 성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피해 유형은 ‘채팅을 통한 욕설(68.6%)’이었다.

성희롱·성차별 피해를 당한 응답자들의 절반가량은 게임업체에 신고하며 적극 대응했다. 그러나 게임업체는 가해자에 대해 ‘채팅 일시 제한(64.6%)’ ‘접속 일시 정지(41.0%)’ 등으로 처리하는 데 그쳤다. 업체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도 33.8%에 달했다.

피해자 성별은 남녀가 비슷했고, 어릴수록 피해를 입은 비중이 높았다. 10대 학생들이 불건전 채팅에 노출되고 있지만 해결할 길이 요원하다.

경찰청 통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임·SNS 등 통신매체이용음란죄 발생 건수는 2011년 910건이었지만, 지난해 2047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게임업체들은 일부 이용자들의 일탈로, 제재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일부 업체는 최근 다소 강경한 방법으로 불건전 채팅 문제 대응에 나서 눈길을 끈다.

지난달 라이엇게임즈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전체 채팅을 비활성화했다. / 사진=리그 오브 레전드 웹사이트

지난달 라이엇게임즈는 ‘리그 오브 레전드’ 일부 서버에 상대 팀과의 채팅을 차단하는 조치를 시도했다. 올해 언어폭력이 문제로 부상한 데 따른 것이다. 단, 감정표현 이모티콘 기능은 남겨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제공했다.

당시 라이엇게임즈는 “누군가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일 수 있지만 전체 채팅의 영향으로 게임 내 만연한 부정적인 분위기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치를 만한 대가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일본 스퀘어에닉스는 지난달 27일 현지에서 서비스 중인 ‘파이널판타지14’의 약관 개정을 통해 금지행위를 구체화했다. 인종·국적·사상·성별·국가·종교·직업·단체 등 차별적 표현과 외설적 표현이다. ‘바보’ ‘죽어라’ ‘네 행동이 잘못됐다’ 같은 불건전 채팅 예시도 함께 들었다. 채팅뿐 아니라 캐릭터의 동작으로 묘사하는 행위도 금지사항이다.

스퀘어에닉스는 약관 개정을 추진한 배경에 대해 “플레이어간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하지만, 타인의 기분을 해칠 수도 있다”며 “배려와 예의를 잊지 않고 행동하자”고 당부했다.

게임업체들은 모니터링과 단속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불건전 채팅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매년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어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해외 사례를 참고해 좀더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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