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리아】"어제(28일) 아침부터 바람이 세지면서 나무들이 하나둘 쓰러졌어. 비바람 속에서 지지목을 부여잡고 버텨봤는데 소용이 없더라고…."

 충북 영동군 영동읍 조심리에서 배농장을 하는 김기열(50)씨는 가까스로 서 있는듯 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자신을 배나무에 기대 겨우 버티는 것 같았다.

 전국을 할퀴고 간 제15호 태풍 볼라벤은 김씨와 같은 충북 영동지역 과수농가 농민들의 마음까지 갈기갈기 찢고 갔다.

 영동지역은 수확을 앞둔 배 80ha를 비롯해 사과 60ha, 복숭아 30ha, 벼 5ha 등 모두 175ha에서 낙과 등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충북 전체 피해면적의 90%를 차지한다.

 이날 오전 8시께 기자가 찾아간 김씨의 배농장엔 나무에 달려있는 배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철골지지대 덕에 나무가 쓰러지지 않은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김씨는 "80% 이상이 떨어졌다. 수확이 채 보름도 남지 않은 상태라 과실의 무게가 많이 나가 피해가 더 컸다. 추석 대목이 코 앞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올 극심한 가뭄에도 농사가 잘됐다며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김씨다. 1만3000㎡의 농장에서 1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8000만원이 태풍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그나마 남은 배들은 떨어진 것들에 비해 알이 작아 좋은 값에 팔기도 힘들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까지 농작물재해보험에 들었는데 별로 혜택이 없는 것 같아 올해는 가입하지 않았다. 손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할 판이다. 영농자금으로 대출한 돈은 상환기한이 연기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빚으로 남는다. 재해 정도에 따라 군에서 농약값 등의 지원도 100여만원 정도라 손해에 비하면 새발에 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동군에서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전체 1만3597곳 중 112농가로 가입률이 1.2% 정도다. 보험료의 75%(국비 50%, 도비 10%, 군비 15%)가 지원되지만 보상금 산정이 까다롭다는 이유로 농가들이 가입을 꺼리고 있다.

 영동군 관계자는 "농작물재해보험은 소멸성 보험이라 인기가 없다"며 "보험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도비 지원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다"라고 밝혔다.

 같은 마을에서 복숭아를 키우는 김덕현(75)씨의 농장은 피해가 더 컸다. 초속 23.6m의 강풍은 복숭아나무 뿐 아니라 과수농가의 농심까지 뿌리채 흔들어 놨다.

 "배농장 피해는 양반이지. 복숭아나무는 뿌리가 끊어져 버려서 못쓰게 돼 버렸어. 다시 심어서 수확을 하려면 5년을 기다려야 된다고."

 약 6000㎡의 김씨 농장엔 100여그루의 나무가 쓰러졌고 불그레하게 익은 복숭아들이 흙바닥 위로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전체 나무의 70%가 넘어졌고 그 중 반 이상은 뿌리가 상해 다시 세운다 해도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다.

 허옇게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을 살피던 김씨는 "태풍이 내일 또 온다 하던데…"라며 망연자실해 했다.

 영동군은 관내 군부대 3곳의 도움을 받아 이날부터 피해복구에 나섰다.

 군 관계자는 "아직까지 포도 재배지역의 피해는 미미하지만 30일 제14호 태풍 덴빈의 영향으로 큰 비가 예상된다"며 "열과(과일이 터지는 현상)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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