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규, 터, 종이 위에 크레파스, 65*65cm, 1990.
양호규, 터, 종이 위에 크레파스, 65*65cm, 1990.

 

날로 먹든 
익혀 먹든

그걸 먹으면 

목이 멜 것이다.

해가 물이 바람이 흙이
그것을 여물게 한다고 하지만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허리 굽혀 땀 흘리며
두둑과 고랑을 만들고
거름 주고 잡초 뽑으며
웃자란 덩굴을 쳐주고

움직이면 안 되는
어깨를 움직여 심고
움직이면 결리는 
어깨로 거두었으리.
병원을 오가며 잘 
자라길 기도했으리.

우애 좋은 형제들처럼 
상자에 누워있는 
굵고 색 고운 것들,
한 사람의 외롭고 쓸쓸한 노고를 
기억하는 것들ㅡ

구워 먹든 
쪄 먹든

그걸 먹으면 
눈물이 날 것이다. 

내가 외출한 사이 고구마 한 상자가 경비실에 맡겨져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고구마 상자의 포장을 풀었습니다. 정갈하게 놓여 있는 그 모습에서 고구마를 보낸 사람의 정성이 보였습니다. 예쁘고 고운 것들만 골라 상자에 넣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어깨가 아프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농사일 때문에 병원에 다녀도 좀처럼 어께 통증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나는 그 고구마를 보면서 갑자기 목이 메여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들처럼 / 상자에 누워있는 / 굵고 색 고운 것들, / 한 사람의 외롭고 쓸쓸한 노고를 / 기억하는 것들ㅡ // 구워 먹 든/ 쪄 먹든 // 그걸 먹으면 / 눈물이 날 것이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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