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배골, 여산如山 선생에게

정비파, 큰-백두대간-청산. 한지위에 다색 목판화. 120*37cm
정비파, 큰-백두대간-청산. 한지위에 다색 목판화. 600*140cm

 

산길은 산이 지우고
물길은 물소리가 지웁니다.

바람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지움으로
여기는 그냥 산입니다.

어깨동무하는 산은
산의 동무들을 모아
더욱 깊고 아득한 산이 되는데,

이쯤이면
묻고 답하는 일과
말[言]을 풀어 뜻을 짓고 세우는 일도
면경面鏡에 슬쩍 비춰보는 얼굴도
지워집니다.

산의 허락도 없이 
산의 사립을 밀고
하늘이 주인처럼 
산에 머무는 동안도

산은 산일뿐이므로
산에 깃든 나도 이미 산입니다.

‘산과 물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세 단계로 발전한다. 먼저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즉 자연현상을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첫 번째 단계다.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면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된다. 만물의 근본이 하나이므로 산과 물의 구별이 사라진다.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다. 천지(天地), 미추(美醜), 주야(晝夜), 희비(喜悲)가 모두 분리되지 않는 하나다. 이를테면 기존 가치체계에 일대 전도현상이 일어나는 두 번째 단계다. 그다음은 산이 도로 산이 되고 물도 다시 물이 되는, 전도되었던 가치체계가 제자리를 찾는 마지막 단계다. 이것은 첫 번째 단계로의 회귀가 아니다. 첫 번째 단계의 산과 물이 단순한 감각적 인식 대상이라면, 마지막 단계의 산과 물은 불성(佛性)을 반영하는 도구다. 이 단계에서 불자(佛子)는 산과 물 속에서, 다시 말해 천지사방에서 부처님의 불법(佛法)을 듣게 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이재철 목사. 중앙일보 2020.2.27)

나는 이기철 목사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3단계의 종교적인 깊이를  알 수는 없지만 구름이 구름이고 물이 물이듯이 ‘산은 산이다.’라는 것은 얼핏 알 것 같습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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