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채택을 추진한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엘살바도르가 7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공식 채택했다. 엘살바도르는 이번 조치로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해외 투자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자칫 위험한 도박으로 끝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기로 한 것은 지난 6월. 당시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1 컨퍼런스’에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켈레 대통령이 이런 조치를 추진한 이유는 엘살바도르 경제의 특이성 때문이다. 엘살바도르는 지난 2001년부터 자국 통화 ‘콜론’의 유통을 중단하고 미 달러를 법정통화로 사용해왔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이 미국 통화정책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 계속됐고, 최근에는 코로나19 등으로 미국이 공격적으로 달러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과도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해 미 달러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다른 문제는 엘살바도르 경제에서 해외송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해외에 거주하는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지난해 고국으로 보낸 송금 규모는 약 60억 달러인데, 이는 엘살바도르 국내총생산(GDP)의 23%에 해당한다.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하게 되면 해외송금에 붙는 수수료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부켈레 대통령은 이번 조치로 인해 매년 약 4억 달러의 수수료가 절약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부켈레 대통령은 금융접근성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엘살바도르의 금융인프라를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채택을 통해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엘살바도르의 계좌 보유율은 은행 29%, 모바일 머니 서비스 4%로 개발도상국 평균(63%, 세계은행 기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엘살바도르는 수수료 없이 비트코인을 달러로 입출금할 수 있는 ATM 및 지점을 확대하는 한편, 전자지갑 앱 ‘치보’(Chivo)를 만들어 이를 사용하는 국민에게 1인당 30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지급하기로 했다.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채택으로 은행 계좌가 없는 국민들이 금융시스템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것에 대해 '상당한 위험'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국제통화기금(IMF)은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것에 대해 '상당한 위험'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은 '위험한 도박'?

하지만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채택을 두고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엘살바도르의 새로운 도전이 실패로 끝날 위험도 있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비트코인의 변동성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엘살바도르의 위험한 비트코인 도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트코인을 이해하는 사람은 엘살바도르 국민의 5% 수준”이라며 “사람들은 지난해 1만 달러에서 6만3천 달러까지 가치가 변동했던 통화로 결제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겠다고, 법정통화의 가치가 하루에도 수백 달러씩 오르내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요 국제금융기관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공식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과 같은 민간 발행 가상자산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며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도 “비트코인 법안 등으로 인한 지배구조 약화로 미국 등 협력국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IMF와의 재정지원 협정이 위태롭게 됐다”며 지난달 엘살바도르의 신용등급을 B3에서 Caa1으로 하향했다. 

해외송금 수수료 부담을 경감하는 효과도 아직 불분명하다. 로이터통신은 7일 “미 달러화를 주고 받는 엘살바도르 국민 대부분은 비트코인을 불신하고 있다”며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의 달러 송금 수수료는 이미 최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비트코인에 대한 국내 여론이 아직 부정적인 상황에서 달러 대신 비트코인으로 송금하는 경우가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는 데다, 이미 수수료 부담도 그리 크지 않다는 것. 

비트코인을 통해 금융인프라를 개선하고 금융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계획도 성공할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미주개발은행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의 인터넷 보급률은 20개 남미·카리브해 국가들 중 온두라스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45%였다.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는 보급률이 겨우 10%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거래되는 비트코인이 널리 사용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엘살바도르의 도전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곳도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것에 대해 ▲송금 수수료 부담 감소 ▲금융시스템의 디지털 전환 ▲소비자 선택권 확장 ▲미국 기업과의 사업기회 확대 및 해외투자 유치 등의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BOA는 이번 조치로 해외 채굴업체나 결제서비스 업체 등의 직접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엘살바도르의 새로운 통화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됐다. 부켈레 대통령의 기대대로 이번 조치가 달러로부터의 독립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비트코인에 대한 종속으로 귀결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