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명익. 무지개.
사진 이명익. 무지개.

 

비가 그쳤다고 
말하는 동안
비는 다시 내립니다.

비가 내린다고
말하는 동안 
비는 이내 그칩니다.

변덕이야 오고 가는 비처럼 
심한 게 없다고 하지만,

산마루 지나가는 구름은
바람처럼 말합니다.

산기슭 지나가는 물안개는  
소문처럼 말합니다.

비가 긋고 내리는 곳은
당신의 마음이라고ㅡ

사물이 있어서 있는 것인가, 그 사물을 인식해서 있는 것인가. 사물이 없다면 인식 자체가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사물이 있다 치더라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것은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사물의 존재에 대해서 사물 자체에 중점을 두는 것과 인식에 무게를 두는 견해가 있습니다. 

공자는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심불재언 시이불견 청이 불문 식이불지기미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 없어서가 아니고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행복한 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지요. 어쩌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기쁨과 행복. 친구를 찾지도 보지도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지요.

그러니 밖에 긋고 내리는 비는 비의 일입니다. 그 비가 내 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 비를 응시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결국 비는 내 마음에 이르러서야, 긋고 내립니다. 오롯이 비가 됩니다. 

‘비가 긋고 내리는 곳은 / 당신의 마음이라고ㅡ’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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