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개 암호화폐 거래소의 예치금 잔액 및 24시간 거래량. 자료=윤두현 의원실, 코인마켓캡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개 암호화폐 거래소의 예치금 잔액 및 24시간 거래량. 자료=윤두현 의원실, 코인마켓캡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 시행이 한 달 남은 가운데 국내 최대 거래소 업비트가 암호화폐 거래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5일 정부가 발표한 ‘가상자산사업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범부처 특별단속 중간실적 결과’에 따르면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 등의 요건을 갖추고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접수한 거래소는 업비트 뿐이다.

업비트와 함께 4대 거래소로 불리는 빗썸, 코인원, 코빗조차 아직 신고를 접수하지 못했다. 세 곳 모두 ISMS 인증은 2018년 획득했지만, 업비트와 달리 제휴 중인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NH농협은행은 제휴 중인 빗썸·코인원에 트래블룰(가상자산 송·수신자 정보 파악 의무) 도입을 요구하며 확인서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 특금법 시행(올해 9월 24일) 이후 금융위원회가 정한 트래블룰 적용 시점(내년 3월 25일)까지 6개월의 공백 동안 잠재적인 자금세탁 위험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 

빗썸·코인원·코빗은 이번 주 중 트래블룰 시스템 구축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해 은행 측 우려를 해소한다는 계획지만, 특금법 시행 전까지 실명계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설령 이들이 특금법 시행 전까지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마무리한다 해도, 이미 업비트와 나머지 거래소를 ‘4대 거래소’로 묶기에는 체급 차이가 너무 벌어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4대 거래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업비트의 이용자 예치금 잔액은 5조2678억원으로 2위 빗썸(1조349억원)의 5배가 넘는다. 빗썸에 코인원(2476억원)과 코빗(685억원)의 예치금 잔액을 더해도 업비트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거래량 또한 마찬가지다. 암호화폐 시황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업비트의 24시간 거래량은 11조4397억원으로 전 세계 거래소 중 바이낸스(22조6573억원)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 이는 국내 2위인 빗썸(1조0562억원)의 11배에 해당하는 수치로, 3개 거래소를 모두 더해도 업비트 하루 거래량의 12% 정도다. 

이러한 차이는 이용자 수에서도 드러난다. 업비트 이용자 수는 7월 말 기준 470만 5721명으로, 빗썸(130만6586명), 코인원(54만7908명), 코빗(10만856명) 등 3개 거래소 전체 이용자수의 2.4배에 달한다. 

특히 특금법 시행에 따른 중소형 거래소 폐업 위기로 인해 이용자들이 대거 대형 거래소로 유입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업비트 독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윤두현 의원실에 따르면, 4월 이후 석 달간 업비트(177만5561명) 신규가입자 수는 3개 거래소(66만6485명) 전체의 2.7배나 된다. 안정적인 거래소를 찾는 투자자들이 업비트로 집중될수록 거래소간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다른 금융업종과 달리 암호화폐의 경우 기능 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거래소에 너무 많은 역할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지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7일 발표한 ‘가상자산거래업, 이해상충 규제의 필요성’ 보고서에서 “현재 가상자산거래업체는 고객들로부터 자금과 가상자산을 미리 예탁받은 상태에서 매매를 중개하며 자기매매, 청산 및 결제, 예탁, 상장 등의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며 “증권사(중개 및 자기매매), 한국거래소(매매체결 및 청산, 상장), 한국예탁결제원(결제 및 예탁), 은행(결제) 등의 역할을 한 곳에서 수행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가상자산 거래는 증권 거래와 비교할 때 다수 기관의 참여를 통한 상호감시 기능이 없어 거래업체와 고객의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으며, 내부정보를 통한 거래, 자기자본 거래 문제도 존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된 규제도 도입되지 않고 역할도 나눠지지 않은 상태에서 암호화폐 시장이 업비트 독점 체제로 재편될 경우 생각보다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없다. 그나마 특금법 개정안이 있지만 주로 자금세탁에 초점을 맞춘 법안인 데다, 허가제를 운용 중인 해외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신고제를 도입하고 있다 .

한편,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가상자산) 업계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보도록 하겠다”면서도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기한 연장에 대해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금법 시행 전까지 업비트 외 다른 거래소들이 요건을 갖추고 신고를 접수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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