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그림]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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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그림] 바람에
  • 김용국(시인)
  • 승인 2021.08.2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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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숙, 공존1, watercolor on paper, 162.2*60.6cm.
신의숙, 공존1, watercolor on paper, 162.2*60.6cm.

 

사라져 버렸다, 저 꽃들처럼
사라져 버렸다, 눈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새들처럼 
사라져 버렸다, 첫사랑처럼, 구름처럼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면 
사라져 버린 것들이 사라져 버린 것들을 
둥글게 껴안고 있는 것이 보이고

손가락 틈으론
미처 불러보지도 못한 
가슴 따뜻한 이름들이 
아코디언, 아코디언 소리처럼
동심원을 그리며 아득해진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라진 것들은. 

저 언덕의 꽃처럼, 눈물처럼, 새처럼
죽음 가까이 도달했던 첫사랑처럼 
구름처럼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라진 것들이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멀거니 쳐다보는 
대낮

지금 마른 땅 위에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는
저 바람은 
또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사라져 
사라진 것들을 만나는 것일까.

과거는 흘러간 시간이고 미래는 오지 않는 시간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지금인데, 지금이라는 시간도 느낄 새도 없이 찰나로 지나가 버립니다. 시간은 밀물처럼 가득가득 차오르는 것 같지만 곧 썰물같이 바뀝니다. 물건처럼 잡아둘 수도 쌓아놓을 수도 없습니다. 스치듯 지나가서 과거의 보이지 않는 어떤 곳으로 흘러갑니다.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지식이든 명예든 재물이든  더 많이 획득하고 더 많이 축적합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이런 것들에 노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아무것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높은 것은 낮게 하고, 낮은 것은 높게 합니다. 있는 것은 없게 하고, 없는 것은 있게 합니다. 쇠나 바위 같은 단단한 것들도 먼지가 되게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열망했던 지식이나 명예 재물을 흩어버립니다. 시간은 흐름만 있을 뿐 고정된 것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흐름의 모서리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을 뿐입니다.

바람에 날아가는 것들을 보면서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생각해 봅니다.

‘지금 마른 땅 위에 /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는 / 저 바람은 / 또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 사라져 / 사라진 것들을 만나는 것일까.’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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