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그림] 그 말
상태바
[시와그림] 그 말
  • 김용국(시인)
  • 승인 2021.08.13 0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은주, 연결고리, 장지 혼합재료, 70*70cm
이은주, 연결고리, 장지 혼합재료, 70*70cm

 

주어도 목적어도 없었지요.
한 단어의 서술어만 있었어요.

망설임과 두려움과 어려움이
그 말에는 있었어요.

그 말 위에 내 말이 떨어지면
그 말은 싹을 틔우고 줄기를 올리겠지요.
그 말을 내 말이 감싸면 
그 말은 향기를 풍기고 꽃을 피우겠지요.

그 말의 모양과 색깔, 
그 말의 온도와 눈짓을 되새김하면서, 
한밤을 지새웠습니다.

그 말이
내 가슴속 깊은 곳에 
따스하게 내리기까지 
그 말이 나에게서
그대에게 되갈 때까지

신새벽부터 
혼자의 먼 길을 걷고 걸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대부분 국어사전에 나옵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나오는 말의 설명만으로는 타인과 소통할 수는 없습니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말에는 고유의 의미 말고도 정서적 기능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타인과 소통에 실패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말의 의미를 잘못 사용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말이 담고 있는 정서적 기능을 염두에 두지 않을 때 그렇습니다. 나아가 한 단어, 한 문장은 의미와 정서를 훨씬 뛰어넘는 생명보다도 무겁고 숭고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어느 날 어떤 이로부터 ‘망설임과 두려움과 어려움’이 가득 찬 ‘주어도 목적어’ 없는 ‘한 단어의 서술어’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은 무겁고 아름다웠고 빛났습니다.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과연 내가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은 뜻이 아니라 마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이 / 내 가슴속 깊은 곳에 / 따스하게 내리기까지 / 그 말이 나에게서 / 그대에게 되갈 때까지 // 신새벽부터 / 혼자의 먼 길을 걷고 걸었습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