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높아 뛰어넘지 못할 것만 같은 장벽을 마주했을 때, 이를 넘어서게 할 안전한 디딤돌을 발견하게 된다면 어떨까. 한 번 더 벽을 넘는 도전을 해볼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청소년 미혼모와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사회에 적응할 디딤돌이 되어주는 곳, 자오나 학교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용기 내어 아이를 선택하거나, 학교에서 밀려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와 함께 안전한 공간을 무료로 제공한다. 

성북구 청덕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려 굽어진 언덕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가면, 정릉 수녀원에 위치한 자오나 학교를 만나게 된다. <이코리아>는 19일 자오나 학교 교장인 정수경 아가다 수녀를 만나 학교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자오나 학교 입구
사진=자오나 학교 입구
사진=교무실에 있는 정수경 아가다 수녀(교장)
사진=교무실에 있는 교장 정수경 아가다 수녀

다음은 아가다 수녀와의 문답이다.

먼저 자오나 학교 소개를 부탁드린다.
-자오나 학교는 24세 이하의 청소년 미혼모, 학교 밖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기숙형 대안 학교다. 사실은 학교라는 말을 쓰면 불법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공적으로는 일반 공립학교, 사립학교처럼 교육청에 소속된 곳이 ‘학교’이기 때문에 우리는 비인가 교육기관이라고 보는 게 맞다. 미혼모 시설은 아니고 학교의 개념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집에서 제대로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교육비와 숙식비가 무료인 기숙형 학교를 시작했다. 숙식이 해결돼야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옛날에는 학교 밖 청소년들하면 ‘노는 애들’로 많이 봤다면 지금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밀려난 학생들이 아주 많다. 이곳의 여자들 중 10대 후반이고 20대 초반인데 아이를 선택한 소녀들이 있다. 우리는 아이를 선택한 청소년들을 응원한다.
우리 학교의 입학 조건은 조금 엄격하지만 임신했을 때 수술하지 않는 것,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를 입양시키지 않고 내 손으로 키우는 것이다. 

설립 배경이 궁금하다.
-원래 이 건물은 여대생 기숙사였다. 수녀님들이 20년 가까이 여대생 기숙사를 하시다가 2014년에 지금의 필요성에 맞는 걸 새로 하자라고 해서, 청소년 미혼모를 상대로 학교를 운영하게 됐다. 청소년 미혼모들이 당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들에게 숙식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숙사를 리모델링해서 반대쪽은 기숙사로 이쪽은 학교로 썼다. 그리고 학교 밖 청소년들 역시 가정이 안정적이지 못했고 어려움에 노출된 건 마찬가지여서 돕게 됐다. 
실제로 두 대상이 지내도 큰 충돌이 있지는 않았고, ‘각각의 대상에 맞게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금은 두 대상을 모두 받고 있다. 원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절반 정도 있었는데 올해 상반기는 청소년 미혼모만 있다. 학교에 있으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교장 수녀님은 언제부터 이곳에서 일하셨나.
-원래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나갔다가 한국에서 수녀님들이 이 학교를 만든다고 해서 불려왔다. 처음에는 담임선생님을 하다가 교장을 하게 됐다. 원래 사범대를 나와서 중등교사 자격증이 있다. 그때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워낙 모자라서 특별한 경우로 초등학교 교사를 뽑았던 시절이 있어서 사범대를 나왔지만, 초등학교에서 일한 적이 있다.  

교사 구성은 어떻게 돼 있나. 수녀님들이 모두 가르치나.
-아니다. 최소한의 행정만 우리 수녀님이 하고 나머지는 다 일반인이다.

교명이 다소 생경하다. 어떤 연유로 고명을 자오나로 정했나.
-성경에 보면 자캐오라는 인물이 나온다. 자캐오는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 안에 예수님을 보고 싶다고 하는 갈망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자캐오가 사는 마을에 찾아왔을 때 키 작은 자캐오에게 나무가 눈에 띄었다. 결국 그 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게 되고, 예수님이 오늘 내가 너희 집에 묵겠다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자캐오에게 기회를 줬다. 그 후 자캐오의 삶의 태도가 변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도 자캐오가 오른 나무의 역할을 하자고 해서 자오나 학교가 되었다.

학생들이 자캐오에 비유될 수 있는 건가
-그렇다, 이곳 학생들은 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배척되는 존재인데 자기 의지로 이겨내보겠다고 오는 학생들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의지다. 어른들은 시설이 좋고 무료니 여기에 보내고 싶어하시는데 본인이 싫으면 못 지낸다.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정말 삶이 절박하고 동기가 생기지 않는 한 지내기 어렵다. 우리도 (학생이) 두 세 명 더 오면 좋겠는데 잘 안 채워진다.

청소년은 가족이나 친지의 돌봄이 필요한데 집안 환경이 여의치 못해 자오나 학교에 오는 경우가 많나
-대부분이다. 부모님이 계셔도 호적상의 부모님이고, 친부모여도 폭력이 심한 경우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친척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 이혼 별거 가정인 경우도 있다.  

청소년들이 자오나 학교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궁금하다.
-여기에 오는 학생들은 본인들이 정보를 구해서 온다. 어른들이 알선해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저희가 기관 홍보도 신경을 쓰기는 하는데 기관을 통해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어떻게 해서 왔냐고 물어보면 거의 네이버 지식인에서 검색해서 알게 되어 온다고 한다. 물론 청소년 상담복지 센터 같은 곳이 있긴 하지만 그런데서 연결을 해줘도 본인이 큰 열의를 내지 않으면 여기를 와볼까 하는 생각을 잘 안 한다. 여기 있는 학생들도 다 자기가 알아서 온 경우들이다.

학생 수는 얼마나 되고, 학교 운영자금은 어떻게 마련하는지.
-지금은 학생이 4명 있고, 태어난 아기가 2명이고 뱃속에 있는 아기가 2명 있다. 경제적인 효율을 따지면 할 수 없는 일인데, 후원해주시는 분들에 의지를 해서 필요한 것들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교내 사진, 지도를 받고 있는 학생과 교사
사진=교내 사진, 지도를 받고 있는 학생과 교사

미혼모와 그렇지 않은 여학생이 섞여 있으면 수업에 지장이 없나.
-우리 학생들이 명목상으로는 14세에서 24세의 학교 밖 여성 청소년, 청소년 미혼모라고는 하지만 그 안에 범주가 되게 많이 나눠져 있다. 그래서 오는 학생들에 맞춰서 그에게 필요한 게 뭔지를 선생님들이 협의를 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물어봐서 거기 맞춰서 개별 시간표를 짠다.

그럼 상당히 수고스러우실 것 같은데
-그렇다. 학생 하나에 맞춰서 프로그램을 다 짠다. 시간표 짜는 게 쉽지는 않다. 효율을 따지면 정말 고비용인거다. 한 학생을 위해서 강사 한 명을 초빙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학생한테 필요한 걸 최대한 맞춰줘야 한다.

수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4학기제로 운영된다. 4월과 8월에 검정고시가 있는데 4월 검정고시까지가 1학기고 8월 2차 검정고시까지가 2학기다. 그리고 8주 수업을 하고 2주 쉬고 성탄까지 8주 수업을 한다. 그래서 1,2 학기는 검정고시 수업이 제일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경우에는 다른 과목들로 채워진다. 아이가 있는 학생들의 경우는 일주일에 한번 양육에 관련된 수업도 한다. 3,4 학기의 경우는 검정고시하고는 멀어서 음악, 미술, 체육, 기본 인성 수업을 한다. 검정고시 끝나고 진로를 준비하는 경우에는 외부 학원에 나가는 경우도 있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아이를 봐주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고 들었다
-그렇다. 학기 중에는 아이를 봐준다. 학기 중에 9시-4시 사이에는 전담해서 봐주시는 분이 계신다. 우리가 아기를 봐주는 건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할 때는 공부를 해, 나머지는 도와준다”의 개념이다. 방학, 주말, 수업 끝나고 그 다음날까지는 학생들이 스스로 아이를 돌본다.  

학생들이 바쁜 하루를 보낼 것 같다
-매일 바쁘다. 그래서 되게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저희가 예전에 혜화역에 ‘나는 학생입니다. 그리고 나는 엄마입니다’라는 광고를 하기도 했다.

옆에서 학생들을 지켜보시면 어떤가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학생들이 “나는 낳아서 키우겠다”고 선택을 했고 “그러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겠어요”라고 용기를 낸 것 자체가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 대부분은 보통은 상상할 수 없는 삶의 굴곡을 거쳐서 온다. 트라우마가 심한 경우도 있다. 그런 과거를 안고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살아보겠다고 용기를 낸 것 자체를 응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오나 학교에 와서 삶이 좀 바뀌어서 나가는 친구들이 많나 
-절반 이상은 무엇인가를 마련해서 나간다. 초창기 졸업했던 청소년의 경우 보육 교사로 일하는 사람이 있고, 메이크업 전문 자격증 따서 메이크업 샵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있다. 간호대학진학해서 지금 4학년인 학생도 있다.

개교 이후 만난 학생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느냐
-그런 질문은 많이 듣는데, 특별한 어느 한 명을 고를 수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독립된 삶을 꾸리는 졸업생들 보면 그 아이들 한명 한 명이 다 기억에 남는다. 


학생들이 아기 아빠들하고는 단절된 상태인건가
-그렇다. 아기 아빠가 (아이와 미혼모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지금 있는 친구 중에서는 호의적인 아기 아빠가 있는 친구도 있긴 있는데, 그건 아주 드문 경우다. 보통 우리 학교 오는 친구들은 아기 아빠하고는 연락 안 한다.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그것에 대해서 같이 걱정하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니 책임이야” ,“난 몰라”이런 태도로 보통 나온다. 

대안 학교 선정에서 제외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로 인해 힘든 점은 없나
-일단 지금은 서울시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센터라는 곳에서 선정한 도시형 대안학교 기관에 선발돼서 급식비, 프로그램비, 인건비 등을 지원 받는다. 그러나 이 지원도 내년까지다. 서울시에서 새로운 대안 교육 기관 지원 조례를 만들면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갈아타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런데 그 기준이 학생 수 10명이다. 서울시에서 우리 보고 “왜 서류를 안 내세요” 그러는데 “학생 수가 10명이 안 되어서 ‘못’ 낸다”고 답변을 한다. 통학생을 고려는 해볼 텐데 저희 학교에 의지를 가지고 9시 15분까지 올 수 있는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싶다. 또 지금 우리 학생 수가 4명인데 이 4명에 대해 수요일마다 회의하는데도 2시간씩 걸린다. 학생 수 마냥 늘어난다고 그게 다 관리가 되는 것도 아니어서 대대적으로 학생 수를 10명 이상 모집할 여력이 없다. 

서울시 지원을 안 받아도 운영에는 차질이 없나
-서울시에서 지원을 안 받으면 일단 그 동안 모아둔 걸로 살고, 자체적으로 개별 후원을 모아야 한다. 기존 후원자분들 유지 관리 하면서 다른 데 가서 도와달라고도 해야 한다. 지원 프로젝트도 따야 한다. 

자오나 학교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자오나 학교 거쳐간 학생들이 "내가 자오나 학교 오기를 잘했구나"라고 느끼고, 졸업할 때 “내가 앞으로 사회에 나아갈 조그마한 것 하나라도 얻어서 나갑니다”라고 얘기해주면 그게 좋은 거다. 이 안에 2년간 살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내가 뭔가를 모를 때 물어볼 사람을 만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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