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자금세탁 등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해준 은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는 요구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에 따라, 코인거래소에 대한 은행의 계좌 발급 심사는 더욱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은 위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열린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나 “자금세탁과 테러자금에 면책을 준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며 “관련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하는 것인데 (은행이) 글로벌한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금융위가 코인거래소 검증 등의 행정절차를 은행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자금세탁 등의 1차 책임은 은행에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은 위원장은 “은행이 (코인거래소 위험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실명계좌발급 요청을) 받아주는 것이고, 괜히 잘못했다가 이익 몇 푼에 쓰러지겠다 싶으면 못하는 것”이라며 “그 판단은 은행이 하는 것이지 금융당국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정도도 할 수 없으면 은행 업무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 위원장이 이처럼 강하게 발언한 것은 최근 들어 코인거래소와 거래에 있어 책임소재에 대한 기준을 세워달라는 은행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시행된 개정 ‘특정금융거래 정보의 이용 등에 관한 법’(이하 특금법)에 따르면,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코인거래소는 원화마켓을 운영할 수 없게 된다.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오는 9월 24일까지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아야 하는 거래소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 코인거래소와의 제휴는 ‘양날의 검’이다. 업비트와 제휴한 케이뱅크처럼 신규 고객 및 수신액 증가 효과를 노릴 수 있지만, 자칫 코인거래소에서 해킹·자금세탁 등의 사고가 발생하면 덤터기를 쓸 수 있기 때문. 이 때문에 은행은 코인거래소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 기준을 제시해달라는 의견을 금융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금융당국이 이를 수용한다면 비조치의견서(금융당국이 금융사의 행위가 법규에 위반되는지에 대해 검토해 회신해주는 것)를 내고 은행 측 우려를 해소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은 위원장은 이에 대해 “비조치의견서에 대해 들은 바 없다”고 일축했다.

금융당국이 명확한 입장을 밝힌 이상 실명계좌를 신청한 코인거래소에 대해 은행들은 더욱 깐깐한 기준을 들이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중소거래소가 폐업 위기에 내몰리면서 규모가 큰 4대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를 중심으로 한 과점체제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은행과 실명계좌 발급 제휴과 된 4대 거래소는 지난달 29일 가상자산 자금이동규칙(트래블룰, Travel rule) 공동 대응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트래블룰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가상자산사업자에게 부과한 규제로, 가상자산 전송 시 송금인과 수취인 정보를 모두 수집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개정 특금법에도 반영돼 내년 3월부터 100만원 이상의 가상자산 거래 시 적용될 예정이다. 

트래블룰 적용까지 약 8개월밖에 남지 않은 만큼 4대 거래소가 재빠르게 공동 대응에 나섰지만, 중소거래소는 여전히 발만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실명계좌 발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중소거래소는 공동 대응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시장의 독점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금법 시행에 따라 중소 코인거래소가 대거 정리될 경우 업비트 등 4대 거래소의 점유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업비트 점유율이 40%였다가 어떤 때는 80%까지 증가한다”며 “점유율이 90%를 넘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이날 조 위원장은 윤 의원의 질의에 “이 부분에 대해 시장을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특금법 유예기간 종료를 앞두고 금융당국이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모습이 어떤 형태로 귀결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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