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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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한 사항은 없다. 고객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을 우선 추진할 것이다”

토스뱅크가 은행업 본인가를 획득한 지난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는 암호화폐 거래소 실명확인계좌 발급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후발주자인 토스뱅크가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제휴를 통해 빠르게 고객을 확보하며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돼왔지만, 이날 토스뱅크는 기대와 달리 선을 긋는 모습이었다.

은행권이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제휴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오는 9월 24일까지 실명확인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암호화폐 거래소는 폐업 수순을 밟게 됐다. 

거래소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제휴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해킹 및 전산장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다, 거래소 임원이 사기 혐의로 구속되는 사태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섣불리 제휴에 나섰다가 덤터기를 쓸 수 있기 때문.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금융당국 제재와 비판 여론에 둘러싸인 은행권이 암호화폐 거래소의 금융사고 리스크까지 짊어질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제휴가 리스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거나 후발주자인 은행에게는 암호화폐 열풍을 타고 고객 수와 수신 규모를 상당히 증가시킬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실제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지난해 6월부터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와의 제휴를 시작해 톡톡히 효과를 봤다. 우선 지난해 말 219만명이었던 고객 수가 지난달 말 605만명까지 늘어났다. 암호화폐 '불장'이 계속된 4월에는 한 달간 무려 146만명의 신규 고객을 유치했다. 

케이뱅크의 수신액 규모 또한 지난달 말 기준 12조9600억원으로 지난해 말(3.7조원)보다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확충 등의 노력도 있었지만, 암호화폐 열풍을 빼놓고 케이뱅크의 최근 성장을 설명하기 어렵다.

토스뱅크는 케이뱅크보다 카카오뱅크와 비슷한 입장이다. 별다른 고객기반 없이 출범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케이뱅크와는 달리, 토스뱅크는 이미 2000만명의 토스앱 사용자를 잠재적 고객층으로 두고 있다. 국내 최대 메신저앱인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한 카카오뱅크처럼, 기존 고객층을 바탕으로 초반 성장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것. 

실제 토스뱅크는 별도의 앱을 출시하지 않고 기존 토스앱을 통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원앱 전략’을 선언했다. 게다가 주 고객층이 모바일 금융에 익숙한 2030이라는 점도 토스뱅크의 초반 성장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초기 고객 확보에 어려움이 컸던 케이뱅크와 달리, 토스뱅크는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제휴라는 카드를 서둘러 뽑아들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다. 설령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제휴가 필요하더라도 무리하게 추진하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예상과 달리 토스앱 사용자의 토스뱅크로 유입이 저조할 경우, 토스뱅크가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토스뱅크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암호화폐 거래소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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