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무 꽃.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피나무 꽃.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우리나라 나무 중에 외자 이름을 가진 나무들이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면서 푸른 솔잎이 매력적인 소나무, 은은한 향기가 매력적인 향나무, 고소한 잣이 달리는 잣나무, 초여름에 달콤한 꽃향기가 매력적인 피나무 등이 외자 이름을 가진 나무들이다. 그중 피나무는 이름이 주는 강렬함 때문인지 그 의미가 궁금해진다.

피나무라는 이름은 나무껍질(나무껍질)이 유용한 나무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피나무의 나무껍질은 질기면서도 부드러워 밧줄 제조 등 섬유재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피나무의 목재는 뒤틀림이 적어 가구나, 악기, 바둑판으로 활용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에게 피나무 하면 떠오르는 것은 초여름 나무에 무성하게 핀 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달콤한 향기이다. 어느 6월 초여름 국립수목원을 방문했을 때, 전시원에 우뚝 솟은 큰 나무가 눈에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먼 곳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강한 꿀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나무를 향해 다가가자 어떤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달콤한 꿀을 찾아온 꿀벌들의 힘찬 날갯짓이었다. 실제로 피나무는 꽃향기에서 느껴지듯 꽃에 꿀이 많고 꿀벌들이 선호하는 성분이 많아서 최고급 밀원수종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피나무 잎.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피나무 잎.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가리왕산의 피나무.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가리왕산의 피나무.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하지만, 이렇게 활용성이 높은 피나무는 자연 상태의 숲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나무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피나무는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지역에 주로 자라는 아고산 수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추위에 강할 뿐만 아니라 목재, 섬유, 밀원 등 활용가치가 높아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피나무를 경제수종으로 육성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피나무와 유사하지만 잎과 가지에 벨벳같이 부드러운 털이 있는 찰피나무라는 나무가 있다. 찰피나무는 피나무에 비해 잎과 열매가 큰 것이 특징이다. 찰피나무라는 이름은 피나무에 비해 잎 앞면이 짙은 녹색을 띠고 있어 ‘찰’자를 붙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피나무와 마찬가지로 초여름 무성하게 피는 꽃에서 달콤한 꿀 향기가 나는 매력적인 나무이다.

피나무는 자연 상태에서는 산의 능선에 주로 자라고 있지만, 찰피나무는 계곡부에서 주로 만날 수 있는데, 양분이 많은 계곡에서 자라기 때문인지 주로 우직하고 줄기가 하늘로 곧게 뻗은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찰피나무 잎과 미성숙 열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찰피나무 잎과 미성숙 열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나무껍질 형태 피나무(좌)와 찰피나무(우).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나무껍질 형태 피나무(좌)와 찰피나무(우).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피나무, 찰피나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도 분포하는 나무이지만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피나무 종류가 있다. 바로 섬피나무이다.

섬피나무는 우리나라 동쪽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세계 유일의 우리나라 자생수종이다. 울릉도의 성인봉에서 나리분지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오래된 숲이 있다. 바로 이 숲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나무 중 하나가 섬피나무이다. 오랜 세월 우리나라 울릉도의 환경에서 적응하며 자라온 소중한 우리나무인 셈이다. 섬피나무도 피나무, 찰피나무와 마찬가지로 달콤한 꿀과 목재자원 가치도 높은 귀한 나무이다.
 

섬피나무 잎.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섬피나무 잎.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2017년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에서 세계산림과학대회(IUFRO) 125주년 총회가 개최되었다. 총회의 기념식수로 심은 나무가 유럽의 피나무(Tilia cordata)였다. 나무를 심기 전 소개하는 자리에서 사회자는 피나무를 기념식수로 선정한 이유로 유럽에서 주로 법원 주변에 식재되었으며 최근에는 가로수로서 널리 식재되고 있는 의미 있는 나무라고 소개하였다.

유럽에서 일찍이 피나무의 가치를 인정받아 폭 넓게 활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나무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피나무를 경제수종으로 육성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익숙한 나무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피나무, 찰피나무, 섬피나무는 우리나라의 초여름을 달콤하게 장식해 주는 소중한 우리나무이다. 밀원자원으로의 가치뿐만 아니라 나무의 재질과 다양한 쓰임새를 가진 피나무에 대한 지속적인 가치 발굴과 연구개발을 통해 우리나라의 중요한 생명자원으로 자리 잡고,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가 되길 기대해 본다. 다가오는 여름, 우리 주변에서 달콤하게 피어있는 피나무 3형제를 만난다면 고마움과 따뜻한 관심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임효인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