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것은 마치 영혼에 양식을 주는 것과도 같다고 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접하는 정보들은 한 아이를 자라나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교과서는 특히 그렇다. 세상에 눈을 뜨는 ‘공부’의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책을 볼 권리’는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서울에 소재한 ‘엑스비전’은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책 볼 권리’를 보장해주는 기업이다. 이곳에서는 단 한 명의 학생이 원해도 대체교과서(점자교과서)를 만들어준다.

궁금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점자책을 만들고 있는지. 그래서 직접 엑스비전에서 교과서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김정호 이사를 만나봤다. 김 이사 역시 시력이 전혀 없는 시각 장애인이다. 그로부터 점자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시각장애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들어봤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직접 시각장애인의 학습을 돕는 일을 해서였을까, 그와의 인터뷰에서 내내 시각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과 따스함이 물씬 느껴졌다. 

다음은 김정호 이사와의 일문일답

-엑스비전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2002년에 창업한 소프트웨어 회사다. 시각장애인들이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를 이용해 편리하게 공부를 할 수 있게 지원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원래는 음성지원 소프트웨어 연구 개발 쪽에 집중하다가 2015년부터는 교육부에서 위탁을 받아 시각장애인 학생 또는 선생님이 필요한 대체교과서, 대체 자료(자습서, 문제집 등), EBS수능방송 교재를 만들고 있다.” 

-교과서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
“회사 대표분과 나 모두 시각장애인이다. 그래서 기술을 활용해 시각장애인들이 장애를 덜 느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회사를 창업했다. 그 과정에서 교육부가 학생들이 교과서를 자유롭게 신청하면 점자교과서를 제공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을 했고, 엑스비전은 인력을 집중적으로 조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책이 공부의 시작이니까 학생들이 원 하는 책을 원하는 때에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목적이다.”  

사진=점자책으로 만들어진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교재 제 3권 표지점자책은 면적도 크고, 단면으로 인쇄되기 때문에 부피도 크다
사진=점자책으로 만들어진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교재 제3권 표지.
점자책은 면적도 크고, 단면으로 인쇄되기 때문에 부피도 크다
사진=점자책으로 만들어진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교재 내용
사진=점자책으로 만들어진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교재 내용

-한 권의 점자 교과서가 만들어지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나
"시각장애인 학생 또는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필요한 교과서가 있으면 17개 시,도 교육청에 신청을 하게 된다. 그 신청 내역이 특수교육원으로 취합돼 오면 우리한테 해당 교과서를 만들라는 업무지시가 오게 된다. 그 다음에 교재출판사로부터 PDF파일을 받고 점역사들이 해당 자료를 편집을 하면, 그 후 테스트와 인쇄 과정을 거쳐 점자책을 신청한 학교로 보급을 한다." 

사진=PDF교재 원본 파일을 워드로 넘기는 과정(좌), 테스팅룸에서 인쇄되는 점자교재(우)
사진=PDF교재 원본 파일을 워드로 넘기는 과정(좌),
테스팅룸에서 인쇄되는 점자교재(우)

-단 한명이 원해도 책을 만든다던데, 꽤 비용 부담이 클 것 같다. 시각장애인 아이들에게 부담은 없나
"우리나라는 장애학생들은 특수교육 대상이기 때문에 의무교육 대상자다.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은 교과서 관련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 교과서를 제공하는 것은 각 시,도의 몫이니까 거기서 교과서 관련 예산을 가지고 보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금과 관련해서는 교과서 대금을 산정하는 기준이 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따라 비용이 책정이 된다." 

- 점자 교과서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것들이 있나
"제작 기간이다. 학생이 아무리 늦게 신청을 해도 개학날 교과서는 만들어서 학생한테 줘야 하는 거다. 그런데 원본 교과서가 일단 입수가 돼야 점자책 작업을 할 수 있는데 원본 교과서가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시기는 다 다르다. 발행시기가 뒤로 미뤄질수록 상당히 부담을 느낀다. 올해의 경우도 2월 중순에 발행된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적기에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많이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실제로 시간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그러면 아이들이 책을 다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나
"교과서가 한 번에 나가는 경우도 있고, 교과서 발행이 늦으면 앞부분만 먼저 나가는 경우도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른데 안 되더라도 아이의 학습에는 지장이 없게 나간다. 아무리 교과서가 늦게 발행이 돼도 4월 말이면 학생들이 다 받아본다."

-점자 교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완되어야 할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점자책을 만드는 문제는 항상 시간과의 싸움이다, 2월 말이나 3월 초에는 굉장히 많은 양의 책을 동시에 작업해야 한다. 그런데 PDF파일을 출판사로부터 받아도 점자로 변환할 때는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편집을 가공을 해야 된다. 여기도 스물다섯 분의 점역사 분들이 일을 하고 있지만, 굉장히 전문성을 많이 요하는 작업이라 무한히 사람을 늘릴 수도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조금 더 빨리, 더 나은 교과서를 줄 수 없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나 저희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다 보니 AI 기술을 활용해서 점자책을 좀 더 빨리 만들 수 없을까를 내부적으로 고민을 많이 한다. 장애인 영역 쪽의 AI투자는 거의 없는데 그런 부분에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

-말씀을 들어보니 점자책 제작이 매우 보람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지
"국내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공부하는 걸 책임지고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데 점자 교과서들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이 교과서를 직접 구해서 주변에 도서관에 요청을 한 후 교과서를 늦게 받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데 지금은 학생이 어느 학교에 다니더라도 점자 교과서가 필요하면 단 한 권이라도 만들어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고, 그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이사님께서는 시력이 전혀 없으시다고 했는데 점자 교재를 만드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직접 점자 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사업 전체를 운영하는 걸 관리를 한다. 또 우리 회사에서 품질 관리 해주시는 분도 시력이 없지만 출력된 점자 교과서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을 하는 일을 한다."

-여기서 근무하시는 분 중에 시각 장애인인 분들이 많이 있나
"현재 사무실에는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이 있다, 출판쪽이 계절적 수요가 커서, 시각장애인분들이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계신다."   

-이사님께서는 공부할 당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내가 어릴 때는 공부할 때 책도 없고, 참고서 같은 것도 없고, 대학교 다닐 때도 책이 없었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일일이 타이핑을 해야 되고 녹음을 해서 읽어줘야 해서 책을 본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지금은 많이 개선된 상태인 건가
"그렇다, 그런데 “개선 많이 됐다”이러면서 만족할 수는 없다. 내가 공부할 때보다 지금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책도 많고 봐야 될 자료도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 대학생 같은 경우는 여전히 책을 늦게 받는 경우도 있어서 중간고사를 볼 때까지 공부를 못하는 상황이 있다. 이런 건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이를 기술 혁신으로 점프해야 한다. 그러니까 어떤 기술을 개발을 할 때 ‘이 기술이 장애인들에게 쓸모가 있지 않을까‘ 이런 방식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다. 예컨대 예전에는 택시를 잡으려면 택시가 와서 설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카카오 택시를 호출해서 '내가 시각 장애인이니 와서 클락션을 울려달라'고 쓰면 되니까 거의 불편함이 없다. 이런 식의 도약이 점자책 분야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살면서 개선됐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시각장애인들이 생활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장애인들에게 우호적인 분위기 하에서 복지제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장애인이 소비자의 한 그룹으로 인식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4차 산업 혁명이 온다 그러면서도 아직 장애인이 그 서비스나 기술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한다. 그게 현재 제일 아쉬운 점이고 그런 방향까지 커버가 돼야 장애인들이 더 통합된 사회가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특정 일을 못한다고 한계를 느끼시는 분들에게 해주실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시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할 수 없고,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없는 등 시각이 반드시 요구되는 일은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시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다만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못할 뿐이다. 예를 들어 기자는 메모를 할 때 볼펜을 들고 노트에다 메모를 하는데, 메모를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녹음을 하거나 외우는 방법도 있다. 자기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내는 방법을 찾고 본인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만의 테크닉을 만들어야 하는 거다." 

인터뷰 내내 양손 깍지를 꽉 낀 그의 모습에서 시각장애인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책임감과 자신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못 할 뿐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내는 방법을 찾으라”는 그의 말처럼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도 그의 온기와 용기가 전달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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