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금융당국의 암호화폐 부실 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암호화폐를 투기로 규정하고 투자자 보호에 부정적 의견을 밝힌 은성수 금융위원장에 대한 사퇴 여론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마감일인 23일 기준 20만1079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4050 인생 선배들은 부동산이 상승하는 시대적 흐름을 타서 노동 소득을 투자해 쉽게 자산을 축적해 왔다. 그들은 쉽사리 돈을 불렸지만, 이제는 투기라며 2030에겐 기회조차 오지 못하게 각종 규제들을 쏟아낸다”며 “민의 생존이 달려있는 주택은 투기 대상으로 괜찮고 코인은 투기로 부적절한가”라고 말했다.

청원인은 은 위원장이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밝힌 암호화폐 관련 입장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은 위원장은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암호화폐에 대해) 한국은행 총재의 말대로 ‘투기성이 강하고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은 위원장은 이어 “그림을 사고팔아서 양도차익이 있으면 세금을 낸다. (그렇다고) 그림을 사고파는 것까지 정부가 다 보호해주나”라며 “본인들이 (암호화폐에) 투자해서 손실이 난 것까지는 정부가 다 보호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청원인은 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깡패도 자리를 보존해 준다는 명목 하에 자릿세를 뜯어갔다. 그런데 투자자는 보호해 줄 근거가 없다며 보호에는 발을 빼고, 돈은 벌었으니 세금을 내라고 한다”며 “이러니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 수준이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든다”고 꼬집었다.

◇ 은성수 “암호화폐 제도권 허용시 투기 열풍 우려”

물론 은 위원장이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를 아무런 이유 없이 망설이는 것은 아니다. 자칫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나섰다가 암호화폐가 제도권 금융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신호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은 위원장은 “제일 걱정되는 부분은 제도권으로 들어와서 갑자기 투기 열풍이 더 불게 되는 것”이라며 “하루에 20%씩 올라가는 자산을 보호해 줘야 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그쪽(투기 열풍)으로 더 가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암호화폐 투자자들이나 업계 관계자 등이 요구하는 것이 꼭 투기에 따른 손실을 보장해달라는 것만은 아니다. 이미 다수의 투자자가 시장에 진입했고 거래규모두 수조원 수준으로 늘어난 만큼, 제도적 구멍을 막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는 것. 반복된 해킹이나 전산장애, 입출금 지연, 암호화폐 관련 투자상품의 과도한 위험성 등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실제 이날 강 의원은 “가상화폐를 은행 예치금처럼 활용하는 투자상품이 굉장히 늘어나고 있다. 누적 예치금액이 지금 확인된 것만 해도 약 7000억원에 달한다”라며 “만약 연 이자 90%를 약속했는데 운용사가 가상자산을 운용하면서 손실이 발생하면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 우려했다.

강 의원은 이어 “이런 상품이 깜깜이로 운용된다면 이를 규제할 근거가 없어서 라임·옵티머스 같은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 또한 스스로 암호화폐 대응이 부실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금융위원회 정책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이하 금발심)의 김용진 산업ㆍ혁신분과위원장은 지난 20일 열린 정책평가 워크숍에서 “암호화폐와 관련해 젊은 투자자의 피해가 커지고 있는데 (금융위가) 선제적으로 시장 규율에 나서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쓴소리를 남겼다. 

◇ 美 SEC, “암호화폐 규제, 의회가 나서야...”

해외에서는 금융당국이 암호화폐와 관련해 적극적인 개입과 규제에 나서고 있다. “내재가치 없는 투기 자산”이라는 우리 입장과 달리 미국의 경우 암호화폐를 통화나 증권과 유사한 디지털 자산으로 규정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를 통해 중개업자를 관리·감독하고 있다. 

암호화폐 규제 주체인 SEC 또한 적극적으로 국회에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입법을 요청하고 있다. 게리 겐슬러 신임 SEC 위원장은 지난 6일(현지시간)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2조 달러에 달하는 가상자산 시장은 강력한 투자자 보호를 통해 수혜를 입을 수 있는 곳”이라며 “(하지만) 현재 SEC와 관계부처들은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규제 프레임워크가 전무한 상태다. 시장을 규제할 기관이 없기 때문에 사기나 시세조작에 대한 보호 수단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이어 “의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금융당국의 과도한 권한 활용보다는 입법을 통한 투자자 보호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국회가 금융당국에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를 요청하는 한국의 상황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가상자산 관련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가상자산사업자 등록제, 시세조종 등 불공정 행위 처벌 등의 내용을 담은 ‘가상자산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발의한 ‘가상자산업법안’은 아예 가상자산사업을 허가제로 바꿔 문턱을 더욱 높였다. 

지난 3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시행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마련됐지만 현재까지 관련 법안은 특금법이 유일하다. 변동성이 크고 투기적 성격이 강한 시장인 만큼 추가적인 입법과 금융당국의 감독을 통해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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