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암호화폐 열풍이 지나치게 확산되면서 거래소 규제를 위한 금융당국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특히, 오는 9월까지 다수의 자격미달 거래소가 폐쇄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이목도 난립한 거래소들의 생존경쟁에 집중되고 있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로 취급 업소 등록을 받고 있는데 현재까지 등록한 업체가 없다”며 “9월까지 등록이 안 되면 200여개의 가상화폐거래소가 다 폐쇄될 수 있기 때문에 투자하는 분들도 본인이 거래하는 거래소가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은 위원장은 “하루에 20%씩 급등하는 자산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투자를 더 부추길 수 있다”며 “많은 사람이 투자하고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갖고 보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은 위원장의 발언은 난립한 국내 거래소들은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정리하되, 기준 미달인 거래소를 구제하기 위한 개입은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25일 시행된 특금법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는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한 거래소만 영업이 가능해진다. 신고 조건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할 것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을 발급할 것 ▲사업자의 금융관련 법률위반 사실이 없을 것 등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실명계좌 발급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와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제휴를 맺을 경우 신규 계좌가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지만, 각종 전산오류 및 해킹사고가 비일비재한 거래소와의 제휴는 자칫 ‘폭탄’이 될 위험도 있다. 특히 각종 부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은행 경영진에 대한 당국의 제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은행이 잠재적 리스크가 큰 중소 거래소와의 제휴에 적극 나서기는 쉽지 않다.

물론 현금 입출금 서비스(원화마켓)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실명계좌를 발급하지 않더라도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원화마켓을 운영하지 않는 거래소에서 굳이 불편을 감수할 이유는 없다. 실명계좌를 발급하지 않는다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

200개가 넘는 국내 거래소 중 현재 은행 실명계좌와 연동해 현금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네 곳 뿐이다. 자칫 현재 운영 중인 거래소 중 열에 아홉은 신고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9월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신고 결격 사유인 거래소 임직원의 금융관련 범죄경력도 만만치 않은 허들이다. 금융당국이 이 기준을 임직원뿐만 아니라 실소유주에게까지 확대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FIU는 이러한 내용의 특금법 개정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빗썸의 실소유주인 빗썸홀딩스 이사회 전 의장 이모씨가 사기 혐의로 경찰에 송치됐지만 신고 불수리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아, 타 금융권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 때문이다.

금융당국 지침에 따르면 현재 거래소의 신고 불수리 사유에는 올해 3월 25일 이후 발생한 범죄만 포함된다. 빗썸의 경우 임원이 아닌 실소유주의 범죄인 데다, 3월 25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향후 신고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타 금융권과의 형평성 문제로 관련 기준 강화를 검토할 경우 다른 거래소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설령 기준이 강화되지 않더라도 중소거래소들의 내부통제 역량이 신고자격을 유지할 정도로 충분할지도 의문이다. 지난 2018년 코인네스트 대표가 고객 예탁금 336억원을 빼돌려 구속당한 이후에도 2019년 래빗 대표가 시세조작으로 127억원을 편취해 구속당하고 지난해 올스타빗 대표가 2000억원대 사기로 1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는 등 거래소 임직원의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기준 미달 거래소를 곧바로 폐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암호화폐 시장에 유입된 자금 규모가 너무 큰 데다, 개인투자자들의 반발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은 위원장의 거래소 폐쇄 발언에 분노한 청원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지난 23일 올라온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이미 14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P2P 시장의 선례가 금융당국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8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온투법)이 시행되면서 P2P 업체들은 오는 8월까지 정식 등록 절차를 마쳐야 계속 운영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난 9개월간 등록 신청을 마친 곳은 6곳뿐이며, 등록 절차가 완료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앞서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018년 1월 “가상화폐 거래가 사실상 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거래소 폐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가 강력한 비난 여론에 부딪힌 바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이례적으로 청와대까지 나서 “박 장관의 발언은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며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은 위원장의 발언이 자칫 3년 전과 비슷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이 거래소의 투명한 운영을 위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개정안 시행에 따른 시장의 혼란을 예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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