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융산업노조 기업은행지부가 12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무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전국금융산업노조
전국금융산업노조 기업은행지부가 12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무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전국금융산업노조

한동안 잠잠했던 IBK기업은행 노사관계에 다시 갈등 기류가 감돌고 있다. 윤종원 행장이 약속했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무산되면서 노조가 거세가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김정훈 단국대 행정복지대학원 겸임교수와 정소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기업은행 사외이사로 임명했다. 윤종원 행장은 노조가 추천한 인사 1명을 포함해 복수의 사외이사 후보를 금융위에 제청했으나, 결국 최종 단계에서 금융위의 낙점을 받지 못했다.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르면 이사 임명권은 금융위가 갖고 있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의 추천을 받은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해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제도로, 노조에 이사직을 의무 배당하는 노동이사제의 하위 개념이다. 이사회 구성을 다양화하고 근로자 의견을 반영하는 한편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논의돼왔으나, 재계는 경영효율성을 떨어뜨린다며 반대하고 있다. 

앞서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 1월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기업은행장으로 임명되자 ‘관치금융’이라고 비판하며 출근저지 시위를 벌이는 등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이후 윤 행장은 노조와의 대화를 통해 ‘6대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겨우 반발 기류를 잠재웠다. 당시 발표된 선언문에는 “은행은 노조추천이사제를 유관 기관과 적극 협의해 추진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사진=뉴시스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사진=IBK기업은행

하지만 윤 행장은 지난 2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는 “노조추천이사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사안”이라며 “중소기업은행법 등 관련 법률의 개정이 수반돼야 추진이 가능하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결국 노조 추천 인사를 금융위에 제청하기는 했으나 적극 추진한다는 당초의 약속에 비해서는 한 발 물러선 셈이다. 

결국 금융위가 노조 추천 인사를 배제하면서 기업은행 노조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는 12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은행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은 2020년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 취임 당시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금융위가 함께 금융노조에게 약속한 사항”이라며 “이번 사태는 명백한 합의 파기이자 10만 금융노동자에 대한 기만”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분노는 당정까지 향하고 있다. 김형선 전국금융산업노조 기업은행지부장은“윤종원 행장 출근 저지 당시 청와대에서 먼저 제안했던 노조추천이사제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며 “대통령이 한 약속을 누가 막고 있는 것인지 분명한 답이 나올 때 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지만, 아직까지 일부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민간에 도입된 사례는 없다. 지난해에는 한국수출입은행에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시도했으나 역시 불발됐다. 

 

노동이사제 도입 이후 변화에 대한 서울시 공기업 이사진 평가. 자료=한국노동연구원
노동이사제 도입 이후 변화에 대한 서울시 공기업 이사진 평가. 자료=한국노동연구원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나 당정도 재계와 마찬가지로 노동이사제가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근로자 이익만 대변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 기업은행에 노조 추천 이사가 선임되면, 다른 금융기관이나 민간으로 논의가 확산될 것을 우려해 판단을 내렸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하지만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노동이사제를 도입 중인 서울시 16개 기관 이사 4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경영 투명성, 공익성, 이사회 운영의 민주성 등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답변이 나왔다. 의사결정이 지연돼 경영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49명 중 34명(69.4%)이 부정적으로 답했다. 특히 노동이사제 도입 이후에도 이사회 안건 통과율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노동이사가 이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여부의 최종 결정은 금융위가 내렸지만, 윤 행장도 지난해 약속한 사안을 결국 실행하지 못한 만큼 노조의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취임 당시 노조의 반발로 27만에 출근에 성공했던 윤 행장이 다시 불거진 노사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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