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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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투자증권이 옵티머스 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에 ‘다자배상안’을 제안했다. 전례 없는 방식인 만큼 배상 논의가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오히려 배상에 걸리는 시간은 단축될 수 있다는 반박도 제기된다.

NH투자증권이 주장하는 다자배상안은 옵티머스 펀드의 수탁사인 하나은행, 사무관리회사인 한국예탁결제원이 공동으로 배상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금융감독원은 옵티머스자산운용이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투자자들을 속이고, 실제로는 부실 비상장 사모사채에 투자한 점을 고려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할 방침이다.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는’ 투자자가 미리 알았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정도로 중요한 사항을 판매사가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경우 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으로, 일부 라임 펀드에 적용돼 투자자들이 투자원금 전액을 환불받은 바 있다. 

내달 5일 열리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가 결정될 경우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이 단독 책임을 지고 투자자들에게 원금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 

NH투자증권이 ‘다자배상안’이라는 카드를 제시한 이유는 단독 책임을 지게 될 경우 배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NH투자증권은 환매 중단된 옵티머스 펀드(5146억원)의 약 84%(4327억원)을 판매한 최대 판매사다. 하나은행과 예탁결제원에 구상권을 청구해 배상액 일부를 충당할 수 있지만, 금융당국이 판매사의 단독 책임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반면 금융감독원이 다자배상안을 수용할 경우, 판매사와 수탁사, 사무관리회사 세 곳의 연대책임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NH투자증권으로서는 한결 부담이 덜하다. 구상권 청구 소송에서도 금감원의 결정이 NH투자증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피해자 입장에서 계약취소와 다자배상 중 어느 쪽이 더 유리하느냐다. NH투자증권은 다자배상안이 배상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켜 피해자들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론적으로는 분조위가 ‘계약취소’로 결론을 내리고 NH투자증권이 투자원금 전액을 반환한 뒤, 구상권 청구 등 나머지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하지만 NH투자증권 이사회에서 계약취소에 따른 전액 반환을 수용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분조위가 제시하는 조정안은 ‘권고’일 뿐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사가 수용하지 않으면 결국 판매사와 투자자 간의 소송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실제 NH투자증권은 지난해 옵티머스 투자자들에게 투자원금의 최대 70%를 선지급했지만, 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이사회를 열었음에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두 명의 사외이사가 중도 퇴임할 정도로 내홍을 겪었다. 

NH투자증권 이사회로서는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 배상에 나설 경우 배임이 될 수 있는 데다, 단독으로 4000억원이 넘는 배상액을 부담할 경우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NH투자증권 이사회가 분조위의 ‘계약취소’에 따른 전액 반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민사 소송으로 이어져 투자자들이 배상을 받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리게 될 수 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29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경영진으로서는 이사회가 분조위의 (계약취소) 권고를 거부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오히려 다자배상안이 피해자분들의 입장에서 배상을 더 빨리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금감원이 다자배상안을 받아들인다면 분조위에서 결정된 배상액을 NH투자증권이 먼저 지급한 뒤, 하나은행과 예탁결제원에 구상권을 청구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세 기관의 책임 분담 논쟁 때문에 협상이 길어지더라도 배상이 지연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다자배상안이 피해자 입장에서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계약취소는 투자원금을 전액 반환받을 수 있지만, 다자배상은 분조위에서 배상비율을 산정해야 하기 때문에 꼭 전액 반환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이미 ‘계약취소’로 법리검토를 끝낸 금감원이 NH투자증권의 다자배상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사무관리회사인 예탁결제원 책임에 대한 금감원와 금융위의 입장도 서로 다르다. 예탁결제원은 펀드 기준가격을 단순 계산하는 업무만 수행했다며 검증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금감원은 예탁결제원에도 징계를 통보한 반면 금융위는 오히려 예탁결제원에 유리한 법령해석을 내놨다. 다자배상안을 수용하려면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금감원은 오는 29일 NH투자증권과 간담회를 열고 옵티머스 사태 분조위 안건 및 쟁점을 사전 논의할 방침이다. NH투자증권이 내민 ‘다자배상안’ 카드에 금감원이 어떻게 답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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