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규. 제목미상. 종이 위에 크레파스, 54.5*57.8cm
양호규. 제목미상. 종이 위에 크레파스, 54.5*57.8cm

 

밟혀 본 사람은 안다, 보리를
줄져 올라온 싹을
푸른 줄기의 허리와 어깨를,

밟혀 본 사람은 안다.
생살 같은 황토의 보리를,

밟혀 본 사람은 안다
밟히는 것들의 신음을
밟혀 무너질수록 눈 뜨는 뿌리를,

밟혀 본 사람은 안다
밟힐수록 왜 꿈꿔야 하는지
겨울바람 맞으며 밟혀 본 사람은 안다.

슬플수록 왜 푸르러야 하는지
보리처럼 밟혀 본 사람은 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장에는 시간이 흐르면 힘든 일도 잊히거나 해결이 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힘들더라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그 힘듦이 자연스레 해결된다는 의미에서 이 문장은 맞습니다. 시간이 모난 바위를 둥글게 하듯이 삶도 기억도 풍화시킵니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요.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세월이 간다면 다 잊히거나 사라지고 변한다고.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것, 사라지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있기 마련입니다. ㅡ사랑한 사람과의 이별이나 사별,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 수모, 굴욕이나 모멸, 뜻하지 않는 사고로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질병이나 장애를 입었을 경우 등일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도 잊히지 않은 깊은 상처가 그 사람을 일으키거나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동인이 되기도 합니다. 프로이드는 예술을 승화昇華라고 했습니다. 승화는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충동이나 욕구를 예술 활동, 종교 활동 등 사회적, 정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치환하여 충족시키는 것’을 말하지요.

모든 위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보리’처럼 ‘밟혀 본 사람’들입니다. 그 밟힘을 딛고 꿈을 실현한 사람들입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