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본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2011년 11월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우체국 앞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금융자본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2011년 11월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우체국 앞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씨티은행과 신한은행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의 피해기업에 대한 자율보상에 나서기로 하면서, 12년간 계속된 피해기업과 은행권, 금융당국 간의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피해기업들이 은행권의 보상 방식을 ‘보여주기식 깜깜이 보상’라고 비판하고 있어, 논의가 좀 더 길어질 가능성도 여전하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이사회를 열고 키코 피해기업에 대한 보상을 결정한 씨티·신한은행의 영향으로 다른 은행들도 긍정적으로 보상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3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다행히 씨티은행과 신한은행이 최근 이사회를 통해 자체 기준과 원칙을 정해 피해보상을 하겠다고 했고, 다른 한 은행도 이야기를 해줬다”며 “금감원장으로서 고맙게 생각하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두 은행을 포함한 키코 판매은행 6곳에게 4개 피해기업에 손실액의 15~41%를 보상하라는 조정결정을 내렸지만, 우리은행을 제외한 5개 은행이 불수용 입장을 밝혀 키코 배상 논의가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산업은행을 제외한 키코 판매은행 10곳이 협의체를 구성해 자율보상안을 논의해온 데다, 최근 두 은행의 보상 결정이 발표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하지만 키코 피해기업들은 여전히 은행권의 보상 논의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보상의 기준과 규모, 대상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이 때문에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28일 성명을 내고 씨티·신한은행의 보상 결정을 “보여주기식 깜깜이 보상”이라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협상이 금융감독기관의 감독과 피해기업 대표 관리 하에서 공개적으로 실행되지 않는다면 공정하지 못할뿐더러, 피해기업들 간에 오해와 이간이 발생해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커질 것이 확실하다”며 “이는 결코 키코 피해의 해결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 은행이 ‘배상’이 아닌 ‘보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 또한 피해기업들을 자극하고 있다. 앞서 신한은행은 지난 15일 보상 결정을 발표하면서 “법률적 책임은 없으나 금융회사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최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중소기업의 현실 등을 감안해 보상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씨티은행 또한 보상 결정에 대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경제적 지원 차원”이라며 법적 책임에 따른 배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엇다.

소송기업이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도 피해기업들의 요구와 배치된다. 신한·씨티은행은 이번 결정이 자체 기준에 따른 자율 보상일 뿐, 기존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비소송기업만을 대상으로 보상이 진행될 예정이다. 반면, 피해기업들은 소송·비소송기업을 구분해 보상할 경우 자칫 기업 간에 오해나 분열이 발생할 수 있다며 구분 없는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공대위는 지난 8월 은행과 정부가 출연하고 소송·비소송기업의 구분 없이 피해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피해기업지원재단 설립을 제안하기도 했다. 

마지막 난관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여전히 키코 배상에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자세한 사항을 검토하고 법무법인과 협의했는데, 다툼의 여지가 있고 명백히 저희가 불완전판매한 혐의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은행은 은행협의체에도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고 있어, 배상은커녕 보상도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공대위는 ▲은행협의체를 공식 가동하고 피해기업 대표단과 공동 관리 하에 즉시 자율협상을 실시할 것 ▲금감원은 협상을 관리·지원할 것 ▲대상 기업 명단과 보상 규모를 사전 공개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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