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국산업은행이 지난 10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동걸 한국산업은행이 지난 10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씨티은행과 신한은행이 연달아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피해기업에 대한 보상을 결정하면서, 아직 보상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한 다른 은행들에 대한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피해기업들은 키코 자율배상 문제 논의를 위한 은행협의체에도 참여하지 않은 KDB산업은행에 대해 모범을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지난 15일 신한은행은 임시 이사회를 열고 키코 사태와 관련해 일부 피해기업에 대해 보상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신한은행 측은 “키코 분쟁과 관련한 법률적 책임은 없다”면서도 “금융회사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최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중소기업의 현실 등을 감안해 보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배상을 권고한 6개 은행 중 절반이 피해기업에 대한 보상에 나서게 됐다. 앞서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해 12월 신한·우리·하나·산업·씨티·대구은행 등 6개 은행에게 키코 피해기업 4곳에 대해 손실액의 15~41%(평균23%)를 배상하도록 조정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중 우리은행은 분조위 권고를 수용했고, 신한·씨티은행은 불수용 입장을 밝힌 뒤 자율배상에 나섰다. 

한편, 신한은행이 자율배상 대열에 합류하면서 나머지 3개 은행도 압박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책은행은 산업은행의 입장 변화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산업은행은 키코 관련 불완전판매 혐의를 부인하며 배상 책임이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키코 배상문제와 관련해 “자세한 사항을 검토하고 법무법인과 협의했는데, 다툼의 여지가 있고 명백히 저희가 불완전판매한 혐의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은 이어 “저희가 판단하기에는 건전한 헤지가 아닌 투기성 흔적도 발견했고 당사자가 많은 분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전문성을 가진 분이라고 판단된다”며 “저희가 배상을 하는 것도 국민세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 하에서 분조위 결정에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 2013년 키코 사태에 대해 불공정거래가 아니라며 판매은행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하지만 윤석헌 금감원장 취임 후 재조사가 진행되면서 지난해 12월 6개 은행에 대한 배상 권고가 이뤄졌고, 그 중 5개 은행이 불수용 입장을 밝히면서 금감원과 은행권 간에 긴장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키코 판매은행들이 분조위 권고나 법적 책임과는 별도로 자율배상을 논의하기 위한 은행협의체를 꾸리면서 보상 논의가 진전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키코와 관련해 불완전판매 혐의가 없다며 협의체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키코 판매은행 11곳 중 자율협의체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산업은행이 유일하다. 

반면 금감원은 산업은행이 배상권고를 불수용한 것에 대해 불편한 입장이다. 윤 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분조위 결정은 권고이기 때문에 (산업은행의 불수용 결정에 대해) 특별히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키코는 불완전 판매가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도 산업은행이 배상 논의에 불참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하고 있다. 참여연대, 금융정의연대,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일 논평을 내고 “키코 판매 은행 중 유일하가 금감원 분조위 ‘키코 배상권고’를 무시하고 배상 자율조정 은행협의체에 불참한 국책은행 산업은행의 행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며 “과거 키코 상품 판매 당시 기업들에 수수료 등 가격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도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피해기업들로 구성된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15일 “신한은행과 씨티은행이 금감원 배상권고를 늦었지만 다시 수용하기로 한 결정에 대하여 솔선수범을 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이어 “국책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도 피해기업 배상에 응하여 주고 은행협의체에 즉시 가입해서 국내에 있는 모든 외국은행들과 시중은행들 앞에 모범을 보여야한다”며 이 회장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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