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1일 차기 은행연합회장에 취임하면서 공석이 된 농협금융 수장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존 관행에 따라 관 출신 인사가 선임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지만, 최근 반복된 ‘관피아’ 논란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변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 이사회는 지난달 27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차기 회장 잠정후보군에 해당하는 롱리스트를 추리기 위한 논의를 개시했다. 농협금융은 오는 8일 2차 임추위를 열고 압축한 차기 회장 후보군을 발표할 예정이다. 

농협금융의 차기 수장으로는 주로 관 출신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서태종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임승태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정은보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대표, 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연이은 ‘관피아’ 논란에도 차기 회장 인선에 관 출신 인사들이 거론되는 이유는 농협금융의 기존 인사 관행 때문이다. 농협금융지주는 농협중앙회 출신인 신충식 초대 회장을 제외하면, 2~5대 회장 자리를 모두 신동규·임종룡·김용환·김광수 등 행정고시를 통과한 경제관료 출신에게 맡겨왔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관 출신 인사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자리다. 최근 들어 농협금융의 위상이 4대 금융을 위협할 정도로 올라왔기 때문. 다른 금융지주사나 금융협회에 비하면 보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민간 금융사에서 경력을 쌓을 경우 ‘관피아’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 농협금융 회장을 맡은 뒤 그동안의 경력을 발판으로 “민과 관을 고루 거쳤다”는 평가를 받으며 금융협회나 정부 요직으로 이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임종룡 전 회장은 2015년 금융위원장으로 영전했고, 김광수 전 회장도 은행연합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는 최근 들어 ‘관피아’ 논란이 반복해서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저축은행중앙회 등 6개 주요 금융협회장 자리는 2017년만 해도 모두 민간 출신이었지만, 이 가운데 다섯 자리가 지난해와 올해를 거쳐 정·관 출신 인사로 교체됐다.

그 뿐만이 아니다. SGI서울보증보험은 지난달 30일 유광열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차기 대표로 선임했고, 한국주택금융공사 차기 사장에도 최준우 전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협금융지주까지 관 출신 인사를 선임할 경우 ‘관피아’ 논란에 다시 휘말릴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동안 외부에서 수혈한 관 출신 회장들이 대부분 임기를 다 마무리하지 못하거나 석연찮은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013년 신동규 2대 회장은 농협중앙회와의 갈등을 이유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며 임기 1년을 남기고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임종룡 3대 회장 또한 임기 5개월을 남기고 금융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용환 4대 회장은 5명의 회장 중 유일하게 임기를 마무리했지만, 연임이 유력한 상황에서 돌연 후보직을 사퇴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광수 5대 회장 또한 임기가 내년 4월 만료되지만, 그보다 일찍 은행연합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옵티머스 사태 등으로 농협금융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면서 일각에서는 책임 회피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금융정의연대는 지난달 27일 논평을 통해 “현재 옵티머스 사태에 연루된 농협은 조사를 받고 배상책임 및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최종 책임자인 김광수 회장은 사태 정리는커녕 도망치듯 떠나 관피아의 길로 들어섰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임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선장이 배에서 내리는 경우가 반복되면서, 굳이 민간 금융사 경력 쌓기가 목적인 관 출신을 다시 뽑아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빅테크의 금융권 진출로 디지털 전환이 금융업계의 당면 과제로 떠오른 만큼, 민간 출신의 금융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농협금융은 올해 3분기 1조4608억원의 누적 순이익을 올리며 우리금융(1조1400억원)을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리더십 공백이라는 위기에 부딪힌 농협금융이 차기 회장 선출 절차를 순조롭게 마무리하고 현재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