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공매도 폐지를 주장하는 청원글.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공매도 폐지를 주장하는 청원글.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된 공매도가 재개되기까지 약 3개월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특히 기관·외국인에 쏠린 공매도 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개인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일본식 모델을 들여오자는 논의가 추진되고 있다. 

지난 2일 공매도 제도 개선을 위한 의미 있는 소식이 두 곳에서 들려왔다. 국회에서는 불법 공매도에 대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부당이익 금액의 3~5배의 벌금과 함께 공매도 주문금액 범위 내의 과징금도 물리는 등 처벌을 강화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개정안’이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를 통과했다. 

같은 날 은행회관에서는 한국증권금융이 연 토론회에서는 개인의 공매도 참여를 확대해 과도하게 기관·외국인에게 치중된 공매도 시장의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K-대주시스템’ 구축이 제안됐다. 중앙에서 대주 재원을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개인투자자에 대한 대주 규모를 지난 2월말 기준 715억원의 20배인 1조4000억원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 개인 참여 기회 확대, 큰손 반칙 엄벌

금융당국이 개인의 참여 기회는 확대하고 큰손의 반칙은 엄벌하는 양방향 전략을 급속도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인식이 최악이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부정적인 정보를 제때 주가에 반영해 주식시장에 과도한 거품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고 시장 유동성을 확대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주가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에게는 ‘공공의 적’ 취급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 유독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에 치를 떠는 것은 단순히 주가하락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기관·외국인이 쉽게 공매도를 활용해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개인의 참여기회는 극도로 제한돼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공매도 금지 연장 조치에 개인투자자들이 “연장이 아니라 아예 폐지하라”며 목소리를 높인 것도 공매도는 불공정하다는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다. 

당장 공매도 재개가 3개월 남은 시점에서 어느 정도 운동장을 평평하게 고르지 않는다면 금융당국에 집중될 개인투자자들의 비난을 감당하기는 버거울 수 있다. 

◇ 개인 접근성 확대하는 일본식 공매도 모델 

국내에서 개인이 공매도에 참여하려면 실제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증권사로부터 빌리는 대주거래를 해야 하는데, 기관·외국인에 비해 신용도가 낮은 개인에게는 차입 기간이나 종목, 수량 등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내 공매도 시장에서 개인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거래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2019년 5년간의 공매도 거래금액 498조원 중 개인투자자 비중은 겨우 1.1%에 불과했다.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69.6%, 29.4%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금융당국의 해결방안은 기관·외국인의 공매도 기회 자체를 닫아버리는 것보다 개인의 접근성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2일 토론회에서 고려된 것이 일본식 공매도 모델이다. 일본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거래 비중은 2017년 거래대금 기준으로 약 23.5%에 달한다. 전체 주식거래에서 개인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보다 낮은 18.1%임을 고려하면 개인의 공매도 참여가 매우 활성화돼있는 셈이다.

일본에서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이 높은 이유는 신용도가 낮아 대주거래에 제약이 많은 개인투자자의 약점을 일원화된 대주재원 공급기구(일본증권금융)를 통해 보완했기 때문이다. 일본도 증권사가 신용도가 낮은 개인투자자들에게 주식대여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개별 증권사가 개인투자자에 대한 대주 재원을 충분히 확보하기에는 많은 비용과 리스크가 수반되기 때문.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본증권금융이 중앙에서 대주재원을 통합 관리해 개별 증권사에 다양한 종목의 물량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다. 대주재원 확보에 드는 비용과 리스크를 중앙기구가 담당하기 때문에, 증권사들도 개인투자자들의 대주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할 수 있다. 

◇ K-대주시스템 도입, 넘어야 할 산 많아

금융당국의 발상은 한국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인 K-대주시스템을 구축해 개인의 참여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개인이 기관·외국인과 대등하게 공매도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 공매도의 순기능을 유지하면서도,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것. 

다만 K-대주시스템의 도입까지는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 우선 K-대주시스템이 대주재원을 원활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일본과 달리 국내에서는 신용융자거래를 위해 담보로 맡겨진 주식을 대주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투자자의 명시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인 개인투자자들이 이에 동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여전히 팽배한 공매도 반발 여론도 문제다. 실제 지난 8월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8%가 “공매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고 25.6%는 “금지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공매도 재개를 주장한 응답자는 15.7%에 불과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여전히 공매도를 완전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빈번하게 올라오고 있다. 한 청원인은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공매도가 금지됐는데, 소위 정부에서 말하는 (공매도의) 순기능이 없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있었나?”라며 “공매도는 폐지해야 할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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