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1월 21일 서울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규제완화 및 감독부실, 금융사 책임회피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1월 21일 서울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규제완화 및 감독부실, 금융사 책임회피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주요 금융협회 회장 자리가 정·관 출신 인사로 채워지면서 '관피아' 논란이 다시금 거세지고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관 출신 인사에 대한 선입견으로 불필요한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6개 금융협회 중 순수 민간 출신 회장은 1곳뿐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차기 회장 인선 작업에 착수한 주요 금융협회 세 곳은 모두 순수 민간 출신이 아닌 정치인 및 관료 출신 인사를 차기 회장으로 선임·내정했다. 우선 행정고시 27회 출신인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과 김광수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달 13일과 27일 각각 손해보험협회와 은행연합회 차기 회장으로 공식 선출됐다. 

생명보험협회 또한 지난달 26일 한나라·새누리당 소속으로 17~19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의원 출신 정희수 보험연수원장을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정 원장은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선거캠프에 합류해 통합정부추진위원회 자문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로서 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저축은행중앙회 등 6개 주요 금융협회 중 5곳의 수장이 모두 정·관 출신 인사로 채워지게 됐다. 지난해 선출된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과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은 각각 행정고시 25회, 26회 출신이다. 6개 협회장 중 순수 민간 출신은 대신증권 대표이사 출신인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2017년)만 해도 6개 금융협회장은 모두 민간 출신이었지만 3년 만에 민관 비중이 6:0에서 1:5로 뒤바뀌어 버렸다. 이처럼 금융협회들이 정·관 출신 인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금융권이 당정 및 금융당국과의 소통 없이는 업계 현안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은행권의 경우 최근 연이어 터진 부실 펀드 사태로 인해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보는 중이다. 여신업계는 카드 수수료 조정 및 법정 금리 인하 문제, 보험업계 실손보험 간소화 및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등의 현안을 앞두고 정부와의 소통 창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 출신 회장에게 각종 규제로부터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줄 방패 역할을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업계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정계나 관료 출신 협회장을 보는 시선은 따갑다. 관피아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정관계 인맥이 넓은 관 출신 인사가 협회장을 맡을 경우 전방위 로비로 인해 업계에 대한 관리·감독이 느슨해지거나, 퇴직자 자리 챙겨주기 같은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정관계 인맥을 중시하다보니 정작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경력은 고려 대상에서 후순위로 밀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 시민단체, “금융권 관피아, 라임·옵티머스 재발 우려”

실제 시민단체들은 최근 금융협회의 관 출신 인사 모시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지난 10월 29일 성명을 내고 “금융협회장은 대정부 로비활동이나 방패막이 역할이 아닌, 금융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전문성을 갖추고 소비자 중심의 마인드를 가진 인사를 선임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정지원 신임 손보협회장과 정희수 생보협회장 내정자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금융정의연대 또한 지난달 27일 논평을 내고 은행연합회가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선임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금융정의연대는 “김광수 회장은 무책임하게도 임기 5개월 이상을 남겨 놓은 현직에서 은행연합회 회장 후보에 출마했다. 정기 주총까지 무려 5개월 동안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이라며 “지난해부터 발생한 사모펀드 사태 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결정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정의연대는 이어 “현재 옵티머스 사태에 연루된 농협은 조사를 받고 배상책임 및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최종책임자인 김광수 회장은 사태 정리는커녕 도망치듯 떠나 관피아의 길로 들어선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 관피아 논란 현재진행형

금융협회장 인선으로 촉발된 관피아 논란은 향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유광열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지난달 30일 SGI서울보증보험 대표이사로 선임된 데다, 정지원 손보협회장 취임으로 공석이 된 한국거래소의 후임 이사장 자리에도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단독 후보로 추천됐기 때문.

관 출신 인사라고 해도 관련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경우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고, 금융당국과의 원활한 소통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관피아’라는 오명이 대표하는 싸늘한 여론의 인식은 그동안 관 출신 금융협회장들이 금융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 선출된 협회장들이 ‘관피아’라는 오랜 낙인을 지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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