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한진칼 8천억 지원에 시민단체 "재벌 경영권 방어" 비판

자료=KDB산업은행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 거래구조도. 자료=KDB산업은행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기 위해 대한항공의 지주사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국책은행이 혈세로 재벌가에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면 산은은 7대 의무조항이 명시된 투자합의서를 통해 한진칼의 경영을 감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산은은 지난 16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 한진칼과 8000억원 규모(3자배정 유상증자 5000억원, 교환사채 인수 3000억원)의 투자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병은 대한항공이 2.5조원의 유상증자로 자금을 마련해 아시아나항공의 신주(1.5조원) 및 영구채(3000억원)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한진칼의 지분이 희석돼 지주사 요건(자회사 지분 20% 이상) 이하로 지분율이 하락할 위험이 있어, 산은의 투자금 8000억원으로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산은이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이 아니라 한진칼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경영권 안정이라는 이득을 보게 됐다는 점이다. 현재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율은 6.52%로 우호 지분을 모두 더하면 약 41.4% 수준이다. 조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대립 중인 KCGI 등 3자연합 우호 지분율이 46.7%인 점을 고려하면 경영권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산은이 3자배정 방식으로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약 10.7%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산은을 조 회장 우호지분으로 본다면, 신주 발행 완료 후 조 회장 측 지분은 47.3%로 상승하는 반면 3자연합은 지분율이 40.4%(신주인수권부사채 제외)까지 희석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조 회장도, 한진칼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그룹 지배력만 강화하게 된 셈이다.

시민단체들은 산은이 한진칼 주주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식의 지원안을 택한 것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17일 한진칼의 지주사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산은의 해명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산은이 한진칼이 아닌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도 한진칼의 지주사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은이 한진칼의 교환사채를 인수해 7000억원을 지원하고, 대한항공이 산은을 대상으로 제3자 배정 방식으로 33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한 다음, 2조17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한진칼은 교환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있다. 물론 29%에서 27.7%로 지분율이 소폭 희석되지만 여전히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는 수준이다. 산은 또한 지원금액이 8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늘어나게 되지만, 대한항공 지분 4.5%를 직접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지원금액이 부담스럽다면 유상증자 참여 비중을 줄이고 교환사채 비중을 높이는 대안도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및 항공산업 재편에 적극적으로 간여하기 위해서는 한진칼 주주의 지위보다 대한항공 주주로 참여하는 것이 더 타당한 의사결정”이라며 “현재 한진칼이 조원태 회장 측과 KCGI 등 3자연합의 지배권 확보 경쟁이 첨예하게 진행 중인 상황임을 고려할 때 (산은의 결정에 대해) 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산은과 조 회장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조 회장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산은의 지원이 특혜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조 회장은 “산은에서 먼저 의향을 물어봐 할 수 있다고 답했다”며 “여러 차례 만나 오랜 기간 이야기하며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산은 또한 7대 의무조항이 담긴 투자합의서를 작성하며 윤리경영을 위해 조 회장 등 경영진을 적극 감시하겠다는 입장이다. 합의서에는 ▲산은이 지명한 사외이사 3명 및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임하고 ▲윤리경영위원회·경영평가위원회를 설치해 오너가 개입 및 부실경영을 방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만약 경영 성과가 미흡하거나 오너 ‘갑질’ 등이 발생하면 경영진 교체나 해임까지 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투자합의서가 계획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없지 않다. 참여연대는 16일 내고 “한진그룹 총수일가와 경영진은 횡령·배임, 명품밀수와 같은 사익편취 행위는 물론 땅콩회항, 물컵갑질 등의 행위로 기업경영에 큰 타격을 입혔지만, 이후 지배구조 개선이나 책임경영에 대한 개혁없이 경영권 분쟁을 일삼고 있다”며 “산업은행은 경영성과가 미흡할 시 경영진 교체나 해임 등도 계획하고 있으며, 경영진의 윤리경영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하지만 이러한 계획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결과적으로 산업은행과 공적자금이 특정 기업 총수와 경영진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데 활용되는 것은 큰 문제”라며 “기업 부실을 심화시킨 아시아나 경영진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나 한진칼의 경영에 대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방침, 독과점 해소, 고용안정 등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8천억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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