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솔루션 회원들이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발행에 주관사로 참여한 증권사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기후솔루션
기후솔루션 회원들이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발행에 주관사로 참여한 증권사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기후솔루션

금융권에 ‘탈석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와 관련된 사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친환경 투자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것.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빈 수레가 요란하다”며 금융권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 금융권, 탈석탄 선언하며 화력발전소 회사채 발행

지난 25일 KB금융그룹은 ESG위원회를 열고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신규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채권 인수에 대한 사업 참여를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룹 계열사가 모두 참여하는 ‘탈석탄’ 선언은 KB금융이 국내 최초다.

KB금융의 탈석탄 선언은 환영할 일이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같은 날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 중인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 1000억원이 예정대로 발행됐기 때문. KB금융 계열사인 KB증권을 비롯해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 키움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6개 증권사가 주관사로 참여했다.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한 ‘ESG’는 최근 금융권의 화두다. KB금융뿐만 아니라 신한금융도 지난해 12월 기후금융을 활성화하고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한다는 내용의 ‘기후변화 대응원칙을’ 선포한 바 있다. 그룹 차원은 아니더라도 개별 은행이나 증권사 등이 ESG 펀드 확대나 친환경 경영전략을 발표하는 사례는 최근 들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삼척 화력발전소 사례를 보면 아직 금융권의 탈석탄 선언을 신뢰하기 어렵다. 한국투자증권은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가 발행되기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8월 21일 석탄투자를 중단하고 ESG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9월, 올해 3월, 9월 등 세 차례의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발행에 모두 주관사로 참여했다. 

KB금융은 이번 탈석탄 선언이 ‘신규’ 사업 참여에 대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KB금융 관계자는 이날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기존에 계약된 건은 고객과의 약속인 만큼 변경하기가 어렵다”며 “향후 화력발전과 관련된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환경단체, “석탄투자 금융사에 책임 물어야”

이처럼 금융사들이 화력발전에 계속 자금을 공급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기는 쉽지 않다. 

독일 기후분석 전문 연구기관 클라이밋 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는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파리협정에서 국제사회가 약속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한국은 2029년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은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평균기온보다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제한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9년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신규 발전소 건설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삼척 화력발전소의 경우 지난 2013년 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포함된 사업이다. 이 때문에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부터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허가를 금지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해당 발전소 건설은 취소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자금을 공급하는 국내 금융사들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환경단체들은 현재 진행 중인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며 국내 금융사들을 비판하고 있다. 기후솔루션 박지혜 변호사는 “석탄발전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 수단 중 가장 비용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시민사회는 이를 외면하고 석탄발전사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는 금융기관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력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사들은 국내 환경단체들의 외침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후솔루션 관계자는 28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발행에 참여한 증권사에 최근 항의서한을 전달했지만, 이후 입장을 바꾸거나 답변을 해온 증권사는 없었다”고 밝혔다. 

◇ 금융권, 진짜 ‘탈석탄’은 언제?

금융권의 ‘탈석탄’ 선언이 공허한 외침이 아닌 실질적인 경영방침으로 자리잡으려면, 환경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 8일 전국 56개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은 지난 8일 금고 운영 은행 선정평가 시 탈석탄 및 재생에너지 투자 항목을 지표로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화력발전에 투자하는 금융사는 금고를 맡기지 않겠다는 것. 

정부가 ‘그린 뉴딜’을 정책 목표로 내세운 데다, 지자체까지 동참하면서 금융사들도 ‘탈석탄’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 지방은행과 달리 석탄대출 규모가 적지 않은 시중은행들은 향후 금고 입찰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적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환경단체와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그린피스, 환경운동연합, 기후솔루션 등은 지난 6월 기자회견을 열고 “탈석탄 투자 금융기관의 확산을 위해 전국 지자체와 교육청이 ‘탈석탄 금고 지정’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전국탈석탄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Korea Beyond Coal)’는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우리는 기관투자자들의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최종 인수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투자 철회와 중단을 이뤄내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삼척 화력발전소 이슈와 관련된 환경단체의 비판이 금융사에게 닿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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