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탈석탄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Korea Beyond Coal)'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삼척 화력발전수 투자 중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탈석탄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Korea Beyond Coal)'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삼척 화력발전수 투자 중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증권업계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증권사들이 앞으로는 ‘친환경 투자’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키움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6개 증권사는 최근 포스코에너지 계열사인 삼척블루파워(구 포스파워)의 공모채 발행 대표주관사로 선정됐다. 

삼척에 호기당 1050MW 규모의 화력발전소를 건설 중인 삼척블루파워는 약 4조9000억원의 건설비 중 1조원을 회사채를 발행해 조달할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9월, 올해 3월 각각 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오는 25일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추가로 발행할 예정이다. 

◇ 증권사들, ‘탈 석탄' 외침, 공허한 메아리

문제는 이번 회사채 발행에 주관사로 선정된 증권사 대부분이 최근 ESG 경영을 강조해왔다는 점이다. ESG는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기업 가치와 지속가능성과 연관된 요소들을 중시하는 경영 방침을 뜻한다. 특히 ‘탈석탄’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ESG 경영 전략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세 번의 회사채 발행에 모두 주관사로 참여한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21일, 증권업계 최초로 석탄과 관련해 추가적인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ESG 투자를 강화하고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른 글로벌 탄소배출량 감축 활동과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동참한다는 취지에서다. 실제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의 15%에 달하는 총 8000억원(약정액 기준) 규모의 ESG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6개 주관사 중 가장 많은 금액인 200억원의 인수를 확약한 NH투자증권도 ESG 경영을 강조한 것은 마찬가지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증권업계 최초로 삼성전자, 현대차, SK, LG화학 등 30개 기업의 ESG 역량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으며, ESG 지수 개발을 위해 전담팀을 구성하기도 했다. 

신한금융투자와 KB증권 또한 그룹 차원의 ESG 경영방침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KB증권의 경우 지난해 국내 발행 원화 ESG 채권 발행의 44.5%인 1조4700억원어치의 주관을 맡았으며, 올해 들어서도 약 3400억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했다. 

기후솔루션 윤세종 변호사가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후솔루션 윤세종 변호사가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ESG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 증권사들이 실제로는 화력발전소 건설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 ‘탈석탄’ 외침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증권사를 통해 석탄발전 산업에 자금이 유입되는 것을 막아야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며 단체행동에 나서고 있다.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기후솔루션,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가 모인 전국탈석탄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Korea Beyond Coal)’는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 발행에 주관사로 참여하는 6개 증권사를 규탄하고, 한국투자증권에 투자 중단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이번 회사채 발행의 주관사로 나선 금융기관 상당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책임투자를 선언한 기관”이라며 “그럼에도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석탄발전사업 회사채 발행의 주관사로 나선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 연설자로 나선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 팀장은 “증권사들이 '탈석탄' 금융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결국 석탄발전에 투자하고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 못하다”며 “지금이라도 삼천 석탄발전 금융투자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제는 증권사들이 국내 환경단체들의 목소리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해외 환경단체의 반발에는 즉각 대응하는 모습과 대비돼 씁쓸함을 남긴다. 

실제 삼성증권, 한화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최근 호주 최대 석탄광산 개발사업(카마이클 광산)의 일환인 아다니 애봇포인트 석탄터미널(AAPT)에 대한 투자를 중단한 바 있다. 현지 환경단체가 해당 사업에 투자한 국내 증권사에 AAPT와 관련된 모든 금융거래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증권의 경우 석탄투자가 자칫 삼성전자 등 그룹 계열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발행 주관사로 선정된 증권사들은 이미 지난 3월 탈석탄네트워크로부터 항의서한을 전달받았음에도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이날 <이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호주에서는 현지 환경단체가 반발하자 바로 투자를 철회했는데, 국내 단체의 요구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며 “한국투자증권 등이 지난달 석탄 투자 중단을 발표해놓고 이번 회사채 발행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탈석탄네트워크는 기관투자자들의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최종 인수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투자 철회와 중단을 이뤄내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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