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화웨이 제재안 시행을 하루 앞두고 국내 양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하반기 전망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추가제재안을 발표한 바 있다. 제재안의 핵심은 전 세계 152개 화웨이 계열사가 미국의 기술을 사용해 개발·생산한 반도체 관련 칩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오는 15일부터는 미국 정부의 사전 승인 없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할 수 없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정부에 화웨이와의 반도체 거래를 승인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추가제재안은 사실상 화웨이의 숨통을 끊기 위한 조치로, 중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미 정부의 강수다. 미중 갈등을 완화시킬 극적인 모멘텀이 없는 상황에서 미 정부가 굳이 제재안의 효과를 떨어뜨릴 선택을 할 리 없다.

반도체 시장의 큰 손인 화웨이와의 거래가 중단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단기적인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2%(7조3000억원), 11.4%(3조원)로 적지 않은 수준이다. 

◇ 삼성전자, '失' 보다 '得' 시각 우세

다만 두 기업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추가제재안이 발표된 지난달 17일 이후 현재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삼성전자 주식을 1422억원 순매수한 반면, SK하이닉스 주식은 1570억원 순매도했다. 증권가에서도 하이닉스의 목표주가는 기존 수준을 유지하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는 소폭 상향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차이는 두 기업의 사업구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우,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로 인해 오히려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에게 화웨이는 반도체 물량을 구입하는 고객이면서, 동시에 5G 통신장비 시장과 스마트폰 시장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이기 때문.

실제 스마트폰과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화웨이와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가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0.4%로 선두인 화웨이(35.3%)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 결과가 충격적인 이유는 불과 1년 전인 2018년 4분기만 해도 삼성전자가 31.6%의 점유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 1년 만에 화웨이에 선두를 뺏긴 데다 에릭슨, 노키아 등 글로벌 통신장비업체에 밀려 4위까지 추락한 셈이다. 

5G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글로벌 5G 스마트폰 점유율은 화웨이가 48.4%로 가장 높았으며, 삼성전자는 14.9%의 점유율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삼성전자는 1분기만해도 34.4%의 점유율로 화웨이(33.2%)에 근소하게 앞서고 있었지만, 갤럭시S20 판매부진 등의 영향으로 화웨이에 크게 뒤처지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5G 시장의 절대 강자인 화웨이가 '미국발 제재'라는 암초를 만난 것은 삼성전자에게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단기적인 반도체 매출 차질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5G 시장 확보로 손실을 메울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이재용 부사장이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이 낙관적인 예측에 한 표를 던지는 이유 중 하나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화웨이는 미국 기술 없이 홀로서기를 시도해야 하는데 스마트폰 사업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올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중국 외에서 5800만대가 예상되는데, 잠재적으로 이 수요는 삼성전자와 애플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하이닉스, 새 고객 찾기 분주

반면 순수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인 SK하이닉스의 경우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으로 입을 손실을 단기적으로 메울 방법이 별로 없다. 게다가 화웨이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1.4%로 삼성전자(3.2%)보다 더 높다. 

하이닉스의 올해 2분기 실적은 긍정적이다. 코로나19로 서버용 D램 수요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30.1%)도 30%대를 회복했다. 하지만 매출의 11%를 담당하던 거래처가 사라질 경우, 3분기 실적 하락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반도체 시장의 최대 고객인 화웨이가 사라질 경우 단기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약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화웨이가 제재안에 대응해 급하게 물량을 확보하면서 당장은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반도체 가격 반등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스마트폰 수요는 어느 정도 일정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하이닉스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고 이번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화웨이의 빈자리를 채울 다른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등장하면 글로벌 반도체 수요는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 게다가 메모리 반도체는 제조업체를 가리지 않는 범용 제품이기 때문에, 하이닉스가 빠르게 새 고객사를 찾는다면 화웨이의 공백을 어렵지 않게 메울 수 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