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수 전라남도의사회장이 2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의사협회
이필수 전라남도의사회장이 2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의사협회

“선진국에서 의대 하나 만드는데 10년 동안 논의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0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기에 관한 이해 당사자 그룹과 어떤 얘기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제가 보기에는 총선 이후에 갑자기 튀어나온 정치용 의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대한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공공의대 법안은 박근혜 때부터 나왔다. 공청회나 토의도 부지기수로 했다. 의협에서 그동안 계속 논의에서 반대해왔는데, 이제 와서 정부가 밀실처리해서 밀어붙이냐고 하나”(이주혁 성형외과 전문의)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공공의대’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공공의대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반면, 의료계는 정부가 코로가19 시국을 맞아 갑작스럽게 불필요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 공공의대 논의, 박근혜 정권에서 시작

‘공공의대’ 논란은 문재인 정권과 의사단체의 갈등이 시초가 아니다. 공공의대 설립 논의는 이주혁 전문의의 말대로 이미 박근혜 정권 당시 시작됐기 때문이다. 

공공의대 논의는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2015년 5월 발의한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에서 출발한다. 지역 숙원사업인 순천대 의대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2014년 순천·곡성 지역구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 전 대표는 “농어촌지역, 오지, 낙도 등 의료취약지는 민간 의료기관 중심 의료체계로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기존 공약을 공공의대 설립으로 변경·추진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이정현 의원안뿐만 아니라 박홍근 의원안(더불어민주당), 윤한홍 의원안(새누리당) 등 19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된 법안이 재발의됐으며, 2018년에는 김태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다시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결국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김성주 의원안(더불어민주당)은 갑자기 튀어나온 정책이 아니라, 2014년 재보궐선거 이후 5년간 진행된 공공의대 논의의 일부인 셈이다.

그렇다면 21대 국회 이전 진행된 공공의대 설립 논의에서 의사단체는 완전히 배제됐을까? 이 또한 사실과는 다르다.

2015년 12월 이정현 의원안과 관련해 ‘공공의료인력 양성방안 토론회’가 열린 이래 매년 공공의대 문제를 논의하는 공청회가 열렸으며, 매번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관계자가 참석했다. 2015년 공청회에는 이혜연 학술이사가, 2018년 김태년 의원안 관련 공청회에는 성종호 정책이사가 참석했다. 2019년 12월 열린 공청회에는 공공의대를 졸속행정이라 비판한 안덕선 소장도 참여했다.

'공공의대' 언론보도 관련 핵심 키워드. 위는 2015~2019년, 아래는 2020년 6~8월. 자료=빅카인즈
'공공의대' 언론보도 관련 핵심 키워드. 위는 2015~2019년, 아래는 2020년 6~8월. 자료=빅카인즈

◇ 공공의대’ 5년 전과 논점 달라져

5년간의 논의에서 의협은 공공의대 설립이 공공의료 강화의 해법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의협은 지난 2015년 이정현 의원안을 반대하며 발표한 성명에서 “이정현 의원 법률안은 의료취약지의 의료서비스 접근성 확대라는 취지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공공의대 신설을 위한 법 제정을 통해 공공의료인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의사인력 수급과 보건의료체계의 혼란만을 초래하며, 의료취약지의 의료접근성 문제도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각 공청회에 참석한 의협 관계자들도 공공의대 신설보다는 기존 의료인력이 공공의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밝혔다. 

2020년 의사들의 집단휴진까지 이어진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논란은 과거의 논의 양상과는 사뭇 다르다. 주로 정책의 ‘실효성’에 초점을 맞춘 과거의 논의와 달리, 현재의 논의는 정책의 ‘공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 공공의대에 반대하는 측은 선발과정에서 지자체장 및 시민단체의 입김이 작용할 경우, 자칫 공공의대가 "있는 집 자식들"의 의대 입학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이코리아>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 시스템을 사용해 지난 3개월간 ‘공공의대’ 관련 언론기사를 분석한 결과, ‘시민단체’, ‘도지사’, ‘학생선발’, ‘현대판 음서제’, ‘추천제’, ‘추천위원회’ 등이 관련 기사와 연관성이 높은 키워드로 나타났다. 이 키워드들은 모두 공공의대 선발과정의 공정성 관련 의혹에 대한 것이다.

2020년 이전에는 어땠을까? 지난해까지는 관련 기사 수가 많지 않아 범위를 2015년부터 2019년까지로 넓히고, ‘공공의대’라는 용어가 통일적으로 사용되기 전이므로 ‘공공 의대’까지 검색에 포함했다. 분석 결과 ‘남원’, ‘순천대’ 등 공공의대 설립 지역을 비롯해, 2018년 폐교되며 공공의대 논의를 재개시킨 ‘서남대’ 등이 중요 키워드로 나타났다. 그 외에는 ‘의료취약지’, ‘의료인력’, ‘의료서비스’, ‘지역사회’, ‘국민 건강’, ‘공중보건장학제도’ 등 정책의 내용이나 필요성과 관련된 키워드가 많았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사진=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갈무리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지난 1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올린 게시물. 사진=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갈무리

◇ ‘공공성’보다 ‘공정성’, 논의 순서 뒤바껴

최근 진행되고 있는 공공의대 논의는 이전과 달리 실제 공공의대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하는지 보다는 공정하게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공의대 선발과정은 공공의대 실효성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된 다음 단계에 진행될 논의다. 게다가 이정현 의원안과 김성주 의원안의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선발과정에 대해서는 두 법률안 모두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발과정의 공정성에 대해 정부의 무책임함을 지적하려면, 법안이 통과된 뒤 청와대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를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논의는 공공의대의 ‘공공성’보다는 ‘공정성’에 치우쳐 있다. 의사단체는 “수능 성적으로 합격한 일반의대 학생과 시민단체 추천으로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한 공공의대 학생 중 누구에게 치료를 받고 싶나”라는 메시지가 담긴 선전물을 내놨다가 여론의 빈축을 사고 있다. 정부 또한 아직 구체적인 선발과정을 논의할 단계가 아님에도 지자체장 및 시민단체의 추천과 관련된 내용을 보도자료에 포함했다가 해명을 반복하는 등 매끄럽지 못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공공의대는 의료취약지에서 오랫동안 일할 의료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기관으로, 장기적인 공공의료 강화정책의 일부분이다. 5년간 지지부진했던 논의가 섣부른 ‘공정성’ 논란으로 좌초된다면, 공공의료강화정책 전체가 휘말리게될 위험성이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소모적인 선발과정 논란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협상 테이블에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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