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의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의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를 75bp 인하하는 동안 신용융자 금리를 전혀 변동시키지 않은 증권사들이 있다. 이를 두고 개인투자자들이 불투명성과 비합리성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지난 27일 열린 증권업계 간담회에 참석한 5개 증권사 대표들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지적을 들어야 했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있는데 증권사는 여전히 높은 신용융자 금리를 적용해 과도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 

은 위원장의 발언 배경에는 최근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난 ‘빚투’ 현상이 놓여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75%p 인하했다. 덕분에 1.25%였던 기준금리는 0.50%까지 떨어져 사실상 ‘제로(0)’ 금리 수준이 됐다. 여기에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시장에 엄청난 유동성이 풀리게 됐고, 실물경제에 앞서 주식시장이 먼저 급격하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높은 부동산 가격과 대출규제로 인해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몰리면서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게 됐다. 

문제는 코로나19 상승장에 올라타려는 개인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대출까지 받아가며 주식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7일 기준 15조8785억원. 코로나19에 따른 하락장으로 지난 3월 25일 6조4075억원까지 하락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2.5배나 증가했다.

‘빚투’의 가파른 증가 덕분에 증권업계도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실제 키움증권의 경우, 올해 상반기 신용융자거래 부문에서만 682억원의 수익을 거둬 증권사 중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상반기 영업이익 3140억원의 약 22%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 뒤는 미래에셋대우 546억원, 삼성증권 456억원, NH투자증권 415억원, 한국투자증권 324억원 등의 순이었다. 

증권사들의 고수익 배경에는 높은 신용거래융자 금리가 놓여있다. 개인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면 일주일 만에 갚아도 4%~7%의 높은 이자를 내야 한다. 한 달이 넘어가면 9.0% 이상의 금리를 적용하는 증권사도 적지 않다.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2~3%인 것과 비교하면 여러 비용을 고려해도 높은 편이다.

증권사의 신용융자 금리가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계속돼왔다.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28개 증권사의 91~120일간 대출금리는 최저 5.4%, 최고 9.9%로 평균 8.5% 수준이었다. SK증권, 교보증권, 메리츠증권, DB금융투자 등은 가장 높은 9.9%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으며, 절반이 넘는 15개 증권사가 9.0% 이상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었다. 

물론 증권사도 사정은 있다. 자금조달금리와 업무원가 등 제반 비용, 신용등급에 따른 프리미엄, 목표 수익률 등을 고려하면 시중은행에 비해 높은 금리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2%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적게는 5%에서 많게는 9%의 가산금리를 덧붙이는 증권사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특히, 증권사의 경우 은행권과 달리 신용융자거래 금리 산정 근거를 명확하게 공시할 의무가 없다. 금융당국은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을 통해 금리 산정 기준을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언제 규정이 개정될지 확실하지 않다.

또한, 기준금리가 0.5%까지 인하됐음에도 증권사들의 신용융자 금리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실제 지난 3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이후 신용용자 금리를 조정한 증권사는 10곳도 되지 않는다. SK증권의 경우 지난 7월 10일부터 조정된 금리를 적용하고 있지만, 15일 이하의 단기 대출에 대해서만 금리를 0.6%~1.6%p 인하했다. 신한금융투자와 케이프투자증권도 1개월 미만의 단기 대출에 대해서만 금리를 소폭 조정했다. 기간과 관계없이 금리를 인하한 경우는 BNK투자증권, KTB투자증권 정도다. 

증권사의 신용융자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증권사는 주가 하락으로 인해 담보 비율이 일정 수준(140%) 이하로 하락하거나 상환이 지연될 경우, 반대매매를 통해 자금을 쉽게 회수할 수 있다. 자금 회수 리스크는 낮은데 금리는 높다면, 돈을 빌리는 개인투자자로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가 하락 리스크와 높은 이자를 모두 투자자가 떠안는 셈이기 때문.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신용융자 금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만큼, 향후 증권업계가 금리를 인하할 여지는 남아있다. 실제 미래에셋대우는 은 위원장과의 간담회 바로 다음 날인 28일 자사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리고 9월 28일부터 영업점 외 계좌의 신용거래 이자율을 9.0%에서 8.5%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또한 증권사 고금리 문제에 직접 개입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27일 간담회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신용융자 금리산정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제고하기 위해 9월 중 금융당국과 업계가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개선방안을 신속하게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지적과 투자자들의 불만 사이에서 증권사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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