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방역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6일 오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방역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심각한 가운데 아파트 집단감염에 대한 우려도 가시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수도권 소재 아파트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곳은 서울 구로구 아파트와 의정부 아파트 두 곳뿐이다. 하지만 방역당국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감염 경로에 대한 원인 규명은 안돼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 26일 구로구 구로1동의 한 아파트에서 5가구 8명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이후, 관련 확진자 수는 30일 기준 35명(금천구 축산업체 관련 확진자 포함)까지 늘어났다.

◇ 환기구가 감염 경로?

당초 구로구청은 같은 라인에 거주하는 5가구에서만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점 때문에 환기구를 감염경로로 추정했다. 구로구청은 27일 브리핑에서 “화장실 환기구가 전 층에 연결돼있고, 화장실 팬을 돌리면 에어 덕트로 공기가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라며 “팬을 안 돌리는 집에선 아랫집에서 올라온 공기가 올라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7일 다른 라인에서 2명의 확진자가 추가로 발견된 데다, 환기구에서 채취한 검체에서 코로나19가 검출되지 않으면서 환기구 가설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실제 코로나19의 공기감염 가능성은 세계보건기구(WHO)도 인정했지만, 아파트 환기구를 통해 전파되려면 배기장치·역류방지장치가 설치돼있지 않거나, 동시에 작동하지 않는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방역당국 또한 환기구를 통한 전파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곽진 방대본 환자관리팀장은 지난 27일 정례브리핑에서 “증상 발현이 빠른 환자가 같은 아파트 내에서 좀 더 층수가 높은 것으로 조사가 된 상황”이라며 “환기구를 통한 전파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환기구를 통한 공기 흐름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데, 고층에서 확진자가 먼저 발생했다는 것은 기존 가설의 선후관계가 틀렸다는 뜻이 된다.

해외에서도 환기구를 통한 감염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는 편이다. 토론토웨스턴병원의 감염병전문가 아브두 샤르카위는 지난 7월 캐나다 CTV뉴스를 통해 “작은 공동주택이라면 환기구를 통한 감염도 가능하다”면서도 “고층아파트의 경우, 위층에 사는 사람이 환기구를 통해 아래층에 사는 사람과 동일한 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 승강기, 배수관 가능성 배제 못해

환기구 가설이 설득력을 잃으면서 구로구 아파트 집단감염이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지난 7월 의정부 장암주공아파트 집단감염 사태도 아직 오리무중이어서 구로 아파트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와 관련 곽 팀장은 “당시 저희가 아파트 내 같은 동의 5개 가구에서 9명의 환자를 확인했었고, 이 이후에 이로부터 추가로 지역사회 전파된 사례가 13명이 있었다”며 “같은 동 주민 9명에 대해서는 감염경로 조사가 여러 방향으로 진행이 됐지만 직접적인 주민 간의 접촉에 의한 전파로 볼만한 건 확인되지 않았으며, 그 외 감염경로에 대해서 아직 확인이 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아파트 내 공용공간이나 승강기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구로구 아파트의 경우 ‘ㄷ’자 구조의 복도식 아파트로, 2기의 승강기가 양쪽 모서리에 설치돼있다. 확진자가 발견된 2개 라인이 비교적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이는 가까이 위치한 승강기를 주로 이용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특성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승강기가 원인이라면 반대편 라인에서는 확진자가 발견되지 않은 이유도 설명이 가능하다.

해외에서는 배수관이 코로나19의 감염경로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CCDC) 연구진은 이달 ‘국제 환경(Environmet International)’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난 2월 중국 광저우의 한 아파트 화장실에서 코로나19가 검출된 사례를 소개했다. 

해당 아파트는 오랫동안 아무도 거주하지 않은 빈 아파트였는데, 코로나19가 검출되기 직전 아래층에서 5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바 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변기에서 물을 내릴 때 발생한 에어로졸을 통해 배수관을 타고 다른 층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며, 관련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했다. 

구로구와 의정부 아파트 집단감염이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감염된 사람은 있는데 방역당국이 원인을 못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파트 감염은 광화문 집회나 신천지, 사랑제일교회 집단감염과 차원이 다르다. 집콕마저 안전지대가 아니면 바이러스 공격으로부터 피할 곳이 없다. 더 늦기 전에 방역당국이 원인 규명을 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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