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개암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누구나 한 번쯤 초콜릿 속에 들어있는 헤이즐넛을 먹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초콜릿만으로도 달콤하지만, 헤이즐넛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과 향은 초콜릿의 풍미를 더해 준다. 이처럼 헤이즐넛이라는 이름의 견과류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우리나라에도 헤이즐넛이 있다는 것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헤이즐넛은 개암나무류(Hazel)의 열매(Nut)라는 뜻으로, 헤이즐넛을 우리말로는 ‘개암’이라고 부른다. 원래 개암나무라는 이름의 뜻은 밤나무보다 못하다는 뜻에서 ‘개+밤나무’가 변한 이름이라고 한다. 개암은 손톱 크기만 하기 때문에 밤나무보다 매우 작지만, 그 맛과 향은 밤에 비해 훨씬 고소하고 담백하다. 이름의 유래에서는 비록 못난이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밤나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력이 있는 ‘개암나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개암나무 수꽃(왼쪽)과 암꽃(중앙).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개암나무 수꽃(왼쪽)과 암꽃(중앙).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먼저, 개암나무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자라는 매우 친숙한 우리나무이다. 소나무, 참나무와  같은 큰키나무가 아닌 진달래처럼 작은키나무이다. 필자가 산림자원학을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 이른 봄 가장 먼저 알게 된 나무 중 하나가 바로 ‘개암나무’였다.

‘개암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수꽃과 암꽃이 따로 피며 한 나무에 같이 달리는 특징이 있다. 개암나무는 봄이 시작하는 3월에 꼬리모양의 긴 수꽃이 잎보다 먼저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다. 샛노랗고 긴 꽃송이가 가늘고 여린 가지 끝에 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암꽃은 수꽃에 비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암꽃은 수꽃이 맺힌 가지 아래쪽에는 말미잘 모양으로 겨울눈 윗부분에 진분홍의 술모양으로 달린다. 암꽃도 수꽃과 마찬가지로 꽃잎이 없이 암술대만 바깥으로 돌출된 독특한 모양을 갖고 있다.

개암나무의 꽃은 꽃잎이 없어, 바람을 이용하여 꽃가루를 전달하는 대표적인 ‘풍매화’이다. 긴 꽃송이에 수많은 꽃밥이 바람에 흔들리면, 송화가루가 날리듯 샛노란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날리게 된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꽃밥이 암꽃의 진분홍 부분에 닿게 되면 수정이 이루어지고 가을철 열매가 만들어지게 된다. 

개암나무 열매도 매우 독특한 모양을 띠고 있는데, 어린 시절 많이 그리던 햇님 모양을 닮았다. 열매의 가장자리는 포엽이라는 기관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에 있는 열매는 밤의 속살처럼 뽀얗고 하얀 공모양으로 달린다. 이 열매를 먹어보면 생밤과 비슷하지만, 훨씬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물개암나무 잎과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물개암나무 잎과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개암나무와 비슷한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로는 물개암나무가 있다. 물개암나무도 개암나무와 마찬가지로 전국의 산속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나무이다. 물개암나무는 잎과 꽃의 모양이 개암나무와 매우 비슷해서 구분이 쉽지 않다. 하지만 열매의 모양으로 두 나무를 구분할 수 있는데, 열매가 햇님 모양인 개암나무와 물개암나무는 독특한 곤봉 모양으로 달린다.

물개암나무는 열매인 개암을 감싸는 포엽이라는 기관이 길게 발달해서 2-4개의 열매가 함께 달리는데, 납작한 불가사리 모양처럼 보인다. 기다란 포엽 속에는 하얗고 동글한 개암이 숨어 있다. 물개암나무의 열매도 개암나무와 같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 물개암나무는 주로 계곡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특성에서 물개암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게 아닐까 싶다. 

개암나무 종류 중 물개암나무와 비슷한 모양의 참개암나무가 있다. 진짜 개암나무라는 뜻의 참개암나무는 주로 남부지역에서 볼 수 있어 다른 개암나무에 비해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나무이다. 참개암나무는 개암을 감싸는 포엽이 물개암나무와 마찬가지로 길게 발달하지만, 참개암나무는 포엽의 끝이 좁게 발달하여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어 넓고 두툼한 포엽을 가진 물개암나무와 구분할 수 있다.

참개암나무 잎과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참개암나무 잎과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개암나무, 물개암나무, 참개암나무는 모두 개암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로 이른 봄 노란 꼬리처럼 발달하는 수꽃과 말미잘 모양의 암꽃을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잎 모양은 세 나무 모두 둥글며, 가장자리가 뾰족한 모양으로 매우 비슷해 열매가 없을 때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개암나무는 나머지 두 수종을 털 모양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개암나무류는 잎자루와 일년지 가지에 1-2mm 정도의 매우 작은 털이 빽빽하게 발달하는데, 개암나무는 털의 끝부분에 붉은색 샘이 달린 샘털이며 물개암나무와 참개암나무는 샘이 없는 솜털이 달리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개암나무 샘털.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개암나무 샘털.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물개암나무 솜털.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물개암나무 솜털.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숲을 지키고 있는 개암나무, 물개암나무, 참개암나무가 있다. 이들 모두 이른 봄에는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담백하고 고소한 열매인 개암을 맺는 귀중한 우리나무이며 소중한 산림생명자원이다. 다가오는 가을, 숲속 산길에서 뽀얗고 동글한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만난다면 한국의 헤이즐넛, 우리나라의 소중한 개암나무 3형제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보내주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임효인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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