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벌 개혁을 위한 공정경제 3법이 2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특히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등을 방지하기 위한 ‘다중대표소송제’가 법안에 포함되면서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를 핵심으로 하는 상법 일부개정안과 전속고발제 폐지 내용을 담은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비(非)지주 금융그룹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이 중 다중대표소송제는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방지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꼽힌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의 주주가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주주들은 총수일가가 자회사를 통해 일감 몰아주는 등의 사익 추구 행위를 견제할 수 있게 된다.

◇ 재계, 소송 남발로 경영간섭 등 부작용 우려

반면, 재계에서는 다중대표소송제가 자회사에 대한 경영간섭과 소송 남발 등의 부작용을 낳을 뿐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지난달 17일 법무부에 상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담은 공동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당시 경제단체들은 의견서에서 “현행 상법상 회사는 출자자의 구성을 고려해 독립적 법인격을 인정하고 있다”며 “출자자가 아닌 모회사의 주주에 의해 제기된 소송으로 인해 자회사 주주권의 상대적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가 다중대표소송제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송리스크’다. 재계는 해당 제도가 시행될 경우 현재보다 소송리스크가 4배가량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4월 1일 기준 자회사를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총 1114개, 이들 상장사의 자회사는 3250개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모회사의 주주들은 1114개의 모기업에 더해 3250개의 자회사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기존 1114개에서 4364개로 소송 대상이 늘어나기 때문에, 소송리스크가 4배나 높아진다는 계산이다.

또한 단기 차익을 노리는 해외 투기자본이 다중대표소송제를 이용해 국내 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도 재계의 걱정거리 중 하나다. 소규모의 지분으로 현대차그룹을 흔들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사례가 재발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 다중대표소송제, 정부안은 너무 약하다?

반면 다중대표소송제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재계의 우려가 과도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우선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요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정부의 상법개정안은 미국·일본 등과 달리 단독주주권이 아닌 소주주권을 도입해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권한을 제한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비상장회사의 경우 총 발행주식의 1%, 상장회사는 0.01%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자회사 이사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6일 기준 336조6957억원으로, 발행주식의 0.01% 이상을 보유하려면 약 337억원이 필요하다. 소액주주들이 자회사 이사진의 책임을 묻고 싶어도, 수십~수백억에 달하는 지분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이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조항 또한 해외 투기자본의 개입을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는 장치로 거론된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이 6개월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주어지는 다중대표소송의 권한을 이용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것.

무엇보다 주주들이 경영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국내에서는 드문 편이다. 경제개혁현구소가 지난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제기된 주주대표소송 사례를 분석한 결과, 21년간 판결이 내려진 주주대표소송은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합해 겨우 137건에 불과했다. 이 중 원고의 청구기 전부 인용된 것은 8건, 일부 인용은 36건으로 전체 소송의 32.1%뿐이었다.

또한, 소송을 제기한 주체도 상장사의 경우는 일반 소액주주가 연합한 경우가 많았고, 비상장사는 1인 주주의 경영권분쟁이 많았다. 하지만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 외국계 자본이 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상법 개정안이 기대 이하라는 반응도 나온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교수)는 26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통상적인 지배관계 형성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30% 출자가 아니라 모자회사 기준인 50% 출자의 경우에만 적용되고, 소 제기요건 완화(단독주주권), 대표소송 원고적격 유지 등의 내용은 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어 “이번에 국무회의를 통과된 법안들은 '개혁'법안이라고 하기에 상당히 민망스러운 수준”이라며 “재계의 거센 반대를 예견해 일부러 처음부터 빈약하게 만들었는데 재계가 이러한 법안에 대해서조차 과도한 규제라고 반대하는 것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평가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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