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감원장은 25일 임원회의에서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에게 전액 배상 권고를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윤 원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윤석헌 금감원장은 25일 임원회의에서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에게 전액 배상 권고를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윤 원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금융당국이 라임자산운용의 부실 펀드를 판매한 은행·증권사에 대한 전액 배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배상 여부에 대한 최종 답변 시한이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라임 판매사들은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25일 임원회의에서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들이 이번 조정안을 수락함으로써 고객 및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이어 “고객의 입장에서 조속히 조정 결정을 수락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주주가치 제고에도 도움이 되는 상생의 길”이라며 “만약 피해구제를 등한시해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모두 상실하면 금융회사 경영의 토대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6월 30일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하고, 판매사에게 투자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신영증권 등 5개 판매사는 모두 답변 기한인 7월 27일까지 분조위 권고 수용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1개월간 기한을 연장했다.

금감원은 라임 배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키코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금감원은 키코 판매은행 6곳에 대해 15~41% 수준의 배상안을 권고했지만, 우리은행을 제외한 6곳이 모두 불수용 입장을 밝히면서 체면을 구긴 바 있다. 특히 곧바로 불수용 입장을 밝힌 산업은행과 씨티은행과는 달리, 다른 3개 은행은 모두 5차례 답변을 연기한 끝에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라임 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 기한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을 방침이다.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는 모두 오는 27일까지 분조위 권고 수용 여부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한다.

판매사들은 분조위의 권고를 수용하는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특히, 이번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의 경우 DLF·키코 사태와는 달리 전액 배상이 결정됐다. 판매사들은 투자자 책임을 묻지 않고 투자원금 전액을 배상하는 선례를 만들었다가, 향후 다른 금융상품과 관련된 사고가 다시 발생할 경우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투자자 손실을 회사 자금으로 물어줬다가 자칫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것도 판매사들이 내세우는 명분 중 하나다.

하지만 금감원은 판매사들의 핑계가 분조위 권고를 거절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우선 판매사들이 우려하는 배임 문제에 대해서는 금감원에서 제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상태다. 앞서 금감원은 라임 사태 피해자에게 투자원금을 선보상할 경우 자본시장법상 손실보전 금지 조항에 위배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은행들에게 “향후 처벌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비조치의견서’를 전달했다. 이사회 논의에서 손실보전의 위법성 및 배임 우려가 불수용의 명분으로 제기될 가능성을 차단한 것.

또한 윤 원장은 25일 임원회의에서 “금융감독 제도도 최근의 시대 흐름에 맞추어 금융소비자보호 중심으로 전환할 시점”이라며 “금융회사에 대한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및 ‘경영실태평가’시에도 분조위 조정결정 수락 등 소비자보호 노력이 더욱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분조위 권고 불수용 시 각종 평가 및 검사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 셈이다.

시민단체 및 투자자들의 여론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점도 판매사들을 크게 압박하고 있다. 금융정의연대와 사모펀드피해자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비난이 들끓으면 조정안을 수용하고 잠잠하면 ‘배임’ 등 핑계를 대며 소송전을 벌이는 금융사들의 막무가내식 책임 회피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번 주 개최되는 이사회에서 금감원의 ‘원금 전액 반환’ 결정을 즉각 수용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적극 나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현재 분조위 권고에 강제성이 없다. 이에 금감원과 여당이 분조위 권고에 강제력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실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분조위 조정안에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내용의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만약 판매사들이 이번 분조위 조정안을 거부할 경우, 분조위 조정안의 효력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힘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향후 다른 펀드 사태와 관련된 판매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남은 이틀 동안 판매사들이 ‘전액 배상’이라는 전례 없는 길을 가는 것과 비난 여론을 무시한 채 배상 권고를 거부하는 것 중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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