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네거리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맞이 캠페인에 설치된 판넬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7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네거리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맞이 캠페인에 설치된 판넬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직장 갑질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특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난해 7월 16일부터 올해 4월 30일까지 총 3738건의 진정사건이 접수됐다. 사업장 규모별로 분류하면 50인 미만이 2127건(56.9%)로 가장 많았고, 그 뒤는 300인 이상 675건(18.1%), 100~299인 484건(12.9%), 50~99인 452건(12.1%)의 순이었다.

사건종결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사건은 총 3218건으로, 이 중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것은 불과 5건(0.16%)에 불과했다. 반면, 법 시행 전 발생했거나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해 단순 행정종결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1074건으로 종결된 사건 중 33.4%를 차지했다. 

자료=용혜인 의원실
직장 내 괴롭힘 진정사건 중 종결된 3218건의 조치 현황. 검찰송치 30건 중 기소의견은 5건. 자료=용혜인 의원실

이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 2)이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가해자와 피해자의 접촉이 잦아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고, 피해가 악화되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영세 사업장일수록 법의 보호가 더욱 필요하지만, 실상은 법의 사각지대로 밀려나 있다. 

고용노동부가 593건에 대해 ‘개선지도’를 조치했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사업장에 개선권고 이행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괴롭힘 그 자체에 대한 처벌 규정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단지 피해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에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고용노동부의 개선지도 또한 제한적인 수준이 그칠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사업장에 권고할 수 있는 것은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과 관련된 내용을 담도록 하는 정도다. 이를 위반해도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앞서 최태호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지난해 7월 17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관련 브리핑에서 “개선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저희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치는 근로감독”이라며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가 된 사업장이라면 다른 근로기준법상의 규정사항들도 이행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같이 체크할 수 있는 근로감독을 실시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전담 근로감독관이 167명에 불과해 모든 사건을 세세하게 관리·감독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가 오히려 근로감독관에게 갑질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공개한 피해사례에 따르면, 직장인 A씨는 피해사례를 신고했다가 감독관으로부터 “그 나이 꼰대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직장인 B씨는 근로감독관에게 진술서와 문자메시지 캡처 등을 제출했지만, 가해자의 인정을 받지 않으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자료=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1주년이 됐지만, 변화를 체감하는 직장인은 드물다. 자료=고용노동부

사정이 이렇다보니 법이 시행된지 1년이 지났음에도 근무환경이 바뀌었다고 체감하는 직장인은 드물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가 지난 2~8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변화 정도’에 대해 물은 결과, ‘변화 없음’이라고 답한 직장인이 718명으로 가장 많았다. 감소했다고 답한 직장인은 198명에 불과했으며, 증가했다는 응답도 84명이나 있었다. 

용혜인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은 단순히 사인 간의 문제가 아니다. 때로는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 하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더 빈발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특성상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시행령 개정을 촉구했다.

용 의원은 이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실질적인 효과를 내려면 입법을 통한 개선이 필요하다”며 처벌 규정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 9일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소관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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