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호소인' 신조어 논쟁, 빅카인즈의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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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호소인' 신조어 논쟁, 빅카인즈의 답은?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0.07.16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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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안희정·오거돈 사건 때와 달리 박원순 시장 사건에서 ‘피해호소여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청와대, 서울시, 민주당이 입이라도 맞춘 듯 ‘피해호소인’이라는 신조어를 남발하고 있다”(김정재 미래통합당 의원)

“‘피해호소인’이라는 사회방언(sociolect)을 조직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저들은 사과할 생각 없다. 이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공개해, 사회에서 매장을 시켜버려야 한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재련(오른쪽 두번째)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혁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재련(오른쪽 두번째)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혁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를 어떻게 지칭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와 더불어민주당은 박 시장 사건과 관련해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피해호소인’께서 겪으시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서 다시 한번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이날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을 발표하며 “가능한 모든 조치를 통해‘ 피해호소직원’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야권과 여성단체 등에서는 민주당과 서울시가 ‘피해호소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피해 사실을 일방적 주장으로 매도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과거 미투 의혹 등에 대해서는 ‘피해자’라는 표현을 사용해온 민주당이 이번 사건에 대해 ‘피해호소인’이라는 새로운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정치적 고려 때문이라는 것. <이코리아>는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이 신조어인지, 아니라면 과거에도 사용돼왔던 용어인지, 신조어가 아니라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됐는지 알아봤다.

◇ 빅카인즈 통해 분석한 피해호소인 기사 횟수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박 시장 사망 이전과 이후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등장하는지 조사해봤다. 박 시장이 사망한 지난 9일 이후 현재까지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기사는 총 745건이었으며, 해당 표현에 대한 논란이 격화된 15일 가장 많은 197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박 시장 사망 전에는 ‘피해호소인’이 사용된 적이 없었을까? 빅카인즈에서 박 시장이 사망한 지난 9일 이전 국내에 보도된 기사를 살펴본 결과,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인용한 기사는 총 49건이다.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2017년 2월 머니투데이의 문화계 미투 논란 관련 기사로, 미투 활동가 탁수정씨의 글을 인용한 부분에서 해당 표현이 사용됐다. 이후에도 ‘피해호소인’은 대부분 대학교수, 지자체장, 지방선거 후보 등과 관련된 미투 논란에서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아내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 논란처럼 미투 논란과 관련 없는 맥락에서 사용된 경우도 있다.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사건인 만큼, ‘피해호소인’ 기사 49건 중 40건이 이 전 이사장 갑질 논란이 보도된 2018년에 몰려 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기사 추이. 위는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일간 그래프. 아래는 지난 9일 이전의 월간 그래프. 자료=빅 카인즈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기사 추이. 위는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일간 그래프. 아래는 지난 9일 이전의 월간 그래프. 자료=빅 카인즈

◇ 시민단체·대학, ‘피해자 중심주의’ 성찰하며 ‘피해호소인’ 사용

언론 보도 밖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2017년 이전에도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사례가 발견된다. 예를 들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행하는 웹진 ‘인권’ 2018년 3월호에 실린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 미투’라는 글에서는 ‘피해호소인’과 ‘피해자’를 같이 사용됐다. 서울시립대 인권센터의 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에는 ‘피해자’가 아닌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만 사용된다. 

하지만 언론이나 기관에서 ‘피해호소인’을 ‘피해자’와 사실상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대학교 학생회나 성평등 단체에서는 맥락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성찰하는 차원에서 ‘피해자’를 대체하는 용어로 ‘피해호소인’을 사용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우선시하고 무작정 의심하는 태도를 지양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자칫 일방적인 ‘호소’만으로 가해자를 확정해버리는 불합리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이는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가 2011년 서울대학교에서 발생한 이른바 ‘담배 성폭력’ 사건에서 처음 사용됐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이별을 통보하면서 줄담배를 핀 것이 성폭력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학교를 넘어서 사회적인 관심을 받았고, 이후 줄담배가 성폭력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단과대 회장이 학내 단체의 압력으로 사퇴하자 비판여론이 확산됐다. 이후 ‘피해자’는 ‘피해호소인’, ‘가해자’는 ‘가해지목인’으로 대체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퍼졌고, 여전히 소수의 진보성향 시민단체나 학술단체, 학생회에서는 해당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 민주당의 ‘피해호소인’ 발언이 비판받는 이유

‘피해호소인’은 대중에게 친숙한 용어가 아닐 뿐이지, 민주당이 이번 사태에 대응해 새로 만들어낸 표현은 전혀 아니다. ‘피해호소인’은 오히려 진보 성향의 단체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초래할 수 있는 또다른 가해를 우려해 성찰적으로 사용해온 용어다. 그동안의 용례를 살펴볼 때, 박 시장 성추행 의혹의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줄곧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20~30대 여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타격을 고려해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이 그동안 발표한 공식 논평과 브리핑, 최고위원 발언에서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경우는 거의 없다. 

<이코리아>가 민주당 홈페이지에 게시된 논평, 브리핑 등을 조사한 결과 2014년 창당 이후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이 포함된 논평은 박 시장 관련 2건을 제외하면 겨우 3건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2018년 3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방지를 위해 관련 내규를 개정하면서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실제로 발생한 성폭력 의혹에 대해 사용한 것은 ▲2018년 5월 미투 의혹이 제기된 전남 무안군수 후보에 대한 추천 취소 결정과 ▲올해 1월 영입인재 원종건씨의 미투 의혹에 대한 사과 발언 등 두 건뿐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뉴시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당은 미투 운동이나 당 안팎의 성폭력 의혹과 관련해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을 ‘피해호소인’이 아닌 ‘피해자’, ‘피해 여성’으로 지칭해왔다. 우원식 의원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 고백을 지지하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은 물론, 재발방지 대책과 '피해자' 중심의 피해회복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정이수 당시 부대변인 또한 김학의·장자연 사건에 대해 “두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 여성'들의 진술이 무시되고, 주요 피의자로 지목된 권력층 피의자들은 제대로 소환되지 않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무혐의 처분되었다는 점”이라며 검찰에 재수사를 촉구했다. 

당내에서 불거진 성폭력 의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인영 의원은 지난 4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에 대해 “민주당은 오거돈 부산시장의 강제추행과 관련해 '피해자'와 부산시민들,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또한 2018년 3월 27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에 대해 “유구무언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 안팎의 모든 성폭력 논란에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며 ‘피해자’ 또는 ‘피해 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올해 초 총선을 앞두고 영입인재의 미투 의혹이 폭로되자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박 시장 사건과 관련해서는 모든 공식 논평과 발언에서 해당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그것이 불러온 논쟁이 불합리하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피해호소인’ 논쟁의 배경에 놓인 맥락을 직시하고 비판 여론을 설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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