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대한민국의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합니다”

성범죄·아동학대·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 ‘디지털 교도소’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개설된 ‘디지털 교도소’에는 이미 76명의 강력범죄자 신상이 공개된 상태다. ‘페드로(Pedro)’라는 가명을 사용 중인 운영자 A씨는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레벨업을 거듭하고 있다”며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처벌, 즉 신상공개를 통해 피해자들을 위로하려 한다”고 개설 취지를 밝혔다.

디지털 교도소와 같이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개설된 바 있다. 특히 지난 2016년에는 강남패치, 한남패치, 오메가패치 등 ‘○○패치’라는 이름을 사용한 웹사이트 및 SNS 계정이 개설됐다가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폐쇄됐다. 이들은 범죄자뿐만 아니라 유흥업소 종사자, 스폰서 루머가 있는 연예인, 극우사이트 회원, 성병 환자 등의 신상을 사실 확인 없이 무단으로 공개했다가, 이와 전혀 무관한 일반인에게 피해를 끼치기도 했다. 일부 사이트의 경우 신상이 공개된 피해자에게 정보 삭제의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디지털 교도소에 대해서도 ‘○○패치’와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칫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일반인에게 강력범죄자 낙인을 붙이게 될 수 있다는 것. 일각에서는 해당 사이트가 후원 유도를 통한 금품 사기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 디지털 교도소는 9일 오후 3시부터 11시까지 한시적으로 비트코인을 통한 후원을 받겠다고 공지했다. 

◇ 일부 네티즌 '머리는 반대, 가슴은 지지'

반면, 흉악범들에게 잊혀질 권리는 과분하다는 지지론도 만만치 않다. 일부 누리꾼들은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 A씨가 지적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공감하며 “법률이 국민이 외치는 정의와 괴리가 큰데 디지털 교도소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 “무고한 피해자들이 ‘마녀’인데, 가해자 신상공개를 ‘마녀재판’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누리꾼은 “정부가 아닌 일반인이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자료를 보니 운영자 입장에 공감하게 된다”며 “디지털 교도소에 대해 머리로는 반대해도 가슴으로는 지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일각의 지지 여론은 최근 논란이 된 여러 성범죄 사건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법원은 지난 6일 다크웹을 개설해 아동성착취영상을 유포한 손정우씨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손씨는 국내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살고 출소했지만,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최소 20년 이상의 징역형이 예상된다. 이 같은 양형 차이가 국민들의 법 감정에 불을 지르면서 해당 판결을 내린 판사를 규탄하는 국민청원이 하루 만에 30만명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 n번방 성착취물 구매자 신상공개, 법원이 불허

모호하고 느슨한 범죄자 신상공개 기준도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지지여론이 확산되는 이유 중 하나다. 국민적 지탄을 받은 ‘n번방’ 사건의 경우 조주빈 등 일부 아동·성착취물 유포자의 신상은 공개됐지만, 구매자들의 신상은 대부분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 1일에는 경찰이 성착취물 구매자 B씨에 대한 신상공개를 결정했지만, 3일 법원이 B씨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결국 불발됐다. 

현행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범죄자의 신상공개는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에서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및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닐 경우에 한해 가능하다. 

죄명이나 형량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모호한 조항 때문에 동일한 강력범죄라도 신상공개 기준은 ‘오락가락’ 한다. 실제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는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같은 해 발생한 ‘수락산 살인사건’ 피의자는 조현병을 앓고 있음에도 신상이 공개됐다. 

◇ '공익 목적' 인정받은 '배드파더스', '디지털 교도소'는?

일각에서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인 ‘배드파더스’의 예를 들며, ‘디지털 교도소’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하지만 공공성의 측면에서 보면 차원이 다르다.

배드파더스의 경우 지난 1월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국민참여소송에서 승소하며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활동을 하면서 대가를 받는 등 이익을 취한 적이 없고, 대상자를 비하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한 사정이 없다”며 “피고인의 활동은 양육비를 받지 못한 다수의 양육자가 고통받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배드파더스 운영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는 재판부의 판단 기준이 디지털 교도소에도 적용될 수 있느냐다. 재판부는 ▲신상공개가 대상을 비방할 목적인지 공익을 위한 것인지 ▲운영자가 신상공개의 대가를 취했는지를 유·무죄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으로 제시했다. 배드파더스의 경우 양육비 미지급자의 사진과 이름, 주소, 직장, 미지급금액 등의 정보 외에는 다른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반면, 디지털 교도소의 경우 대상과 관련된 기사나 영상뿐만 아니라 인신공격성 표현 등도 함께 게시된다. 예를 들어, 손정우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을 내린 판사들에 대해서는 ‘향정신성 식물 솜방망이’라는 게시물을 따로 만들고 “솜방망이과 동식물로 인간을 마인드 컨트롤해 말도 안 되는 판결을 이끌어내는 무기”라고 비꼬았다. 또한, 신상정보 공개 게시물에 댓글란도 따로 만들어 공개 대상에 대한 욕설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운영자 A씨가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 어려운 암호화폐를 사용해 한시적이지만 후원을 받는 것도 현행법상 불법의 소지가 있다.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어 디지털 교도소가 배드파더스와 달리 공익적 목적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운영자 A씨는 7일 중앙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모욕죄, 명예훼손죄가 성립되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며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라면 얼마든지 처벌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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