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투자증권 본사. 사진=뉴시스
NH투자증권 본사. 사진=뉴시스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기’ 의혹과 관련해 판매사와 수탁사, 금융당국 간의 책임 공방이 격화되면서 정작 큰 피해를 입게 된 투자자들은 소외되고 있다. 특히, 운용사의 서류 위조에 당했을 뿐이라는 판매사의 변명에 피해자들은 전액 반환을 요구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8일 미래통합당 윤창현 의원실이 금융당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기준 옵티머스자산운용에는 개별 펀드 46개에 투자원금 5151억원의 규모의 펀드가 설정된 상태다. 투자자는 총 1163명으로 개인투자자와 법인투자자가 각각 979명, 184곳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판매사는 NH투자증권으로, 투자자 1049명(개인 881명, 법인 168곳)이 총 35개 펀드에 4327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투자자의 90%, 가입금액의 84%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 뒤는 하이투자증권(325억원), 한국투자증권(287억원)의 순이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판매 비중이 작은 한국투자증권이 7일 투자원금의 70%를 선지급하겠다고 발표한 반면, 가장 판매 비중이 높은 NH투자증권은 아직 구체적인 배상안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지난 2일 “판매사가 받아야 할 고통을 피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대표이사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사장은 이어 “판매사 책임에 대한 도의적·법리적 문제의 괴리가 커, 내부적으로 의견을 취합 중”이라며 “시스템, 제도 등으로 인해 검증을 더 철저히 할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 옵티머스자산운용은 펀드 명세서 등 서류를 위조해 고의적으로 판매사와 수탁사, 금융당국을 기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홍보하며 투자금을 모은 다음, 실제로는 부실 사모채권에 투자금을 쏟아부으면서 주요 서류를 위조해 증권사와 예탁결제원의 검증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판매사들도 운용사의 교묘한 사기와 느슨한 금융당국의 감독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반면, 투자자들은 불완전판매의 책임이 있는 판매사가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을 통해 옵티머스 펀드에 가입한 한 투자자는 “옵티머스 펀드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이 보장된다”며 적극적으로 권유해 펀드에 가입했다며, 판매사의 책임을 지적했다. 다수의 투자자들은 대형 증권사의 검증을 거친 안정성 높은 상품이라는 홍보가 아니었다면 과거 횡령 의혹이 있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불완전판매 의혹을 거듭 제기하고 있다.

현행법 상 판매사가 운용사를 검증할 권한이 제한적이라는 변명도 100% 납득하기는 어렵다. NH투자증권은 옵티머스자산운용에 대한 실사를 진행했으나, 이미 펀드 관련 정보가 위조돼있어 문제를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옵티머스 펀드를 판매한 일부 증권사들은 NH투자증권과 달리 지난해부터 판매 규모를 크게 줄였다. 

실제 NH투자증권의 옵티머스 펀드 판매 규모는 지난해 3분기 기준 2533억원에서 올해 1분기 4407억원으로 74%나 증가했다. 반면, 대신증권은 2018년 초 680억원 수준이었던 판매 규모를 꾸준히 축소해 올해 1분기 45억원까지 줄였다. 한화투자증권 또한 지난해 1분기 2370억원이었던 판매 규모가 현재 19억원 수준으로 급격하게 축소됐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이날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다른 증권사와 실사 절차나 기준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객들이 자율적으로 환매해 판매 규모가 줄어든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 또한 “판매 규모가 줄어든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두 증권사가 옵티머스자산운용에 대한 실사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발견해 고객들에게 환매를 권유한 것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다. 실제 익명의 대신증권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한겨레를 통해 “펀드 설정 뒤 정기 실사를 나갔는데 임직원의 금융 전문성이 높지 않아 보여 신뢰가 가지 않았고, 위험 관리 차원에서 고객들에게 환매를 유도했다. 지금은 법인기업 고객 1곳만 남아있다”고 밝혔다. 만약 업계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금융투자업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NH투자증권의 사후관리 프로세스에 구멍이 있었던 셈이다. 

피해자들도 NH투자증권의 검증 책임을 묻고 있다. 지난 2일 NH투자증권을 방문한 ‘옵티머스 펀드사기 피해자모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시스템상 검증을 하기 어려웠다”며 “상품 검토 과정에서 펀드 명세서 등 서류 검증밖에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게다가 NH투자증권이 사전에 옵티머스 펀드의 부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8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의 투자제안서에는 투자 대상으로 ‘공공기관 확정 매출채권’만 기재돼 있으나, 투자 결정 뒤 투자자에게 지급되는 ‘집합투자규약’에는 “국내발행채권에 투자할 수 있다”는 표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규약은 NH투자증권도 가지고 있었던 만큼, 펀드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파악하지 못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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