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사진=장혜영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사진=장혜영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17대 국회부터 여섯 차례나 실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시도가 21대 국회에서 다시 시작된다. 우호적인 여론에 힘입어 ‘6전7기’가 기대된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참여가 저조해 국회 통과가 불확실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오늘 발의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출발선”이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코로나 위기에서 나와 내 이웃의 삶을 지키는 마스크와 같이 우리 모두의 안전과 존엄을 지키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 6개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내용은?

흔히 ‘포괄적’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소개되는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등의 이유로 행해지는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처음 발의한 이후 노회찬, 권영길, 김재연, 김한길, 최원식 의원 등 총 여섯 차례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는데 실패했다.

장 의원 이전 발의된 6개 법안의 내용은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노무현 정부안은 불합리한 차별의 사유로 “성별, 연령, 인종, 피부색, 출신민족, 출신지역, 장애, 신체조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의견, 혼인, 임신, 사회적 신분, 그 밖의 사유” 등을 열거하고, 국가인권위원회 및 법원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차별이 있었었다는 사실은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차별에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것은 상대방이 입증하도록 해 입증책임의 부담을 나눴고, 피해를 주장하는 측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경우 30일 내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규정했다. 차별행위가 인정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차별행위자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법인이나 그를 고용한 개인도 벌금을 납부하도록 했다. 정부가 5년마다 차별시정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할 의무도 명시했다.

2008년 노회찬 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기존 차별 사유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병력, 학력, 전과, 고용형태, 출신국가 등을 추가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직접 가해자에게 시정명령을 내리고, 미이행 시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반복해서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피해구제 기관으로서 인권위의 개입력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가해자가 피해액의 2~5배를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고 정당한 사유 없는 정보공개청구 불응 시 차별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하는 등 처벌도 한층 강화됐다.

이번에 발의된 장혜영안과 2013년 발의된 김한길안은 노회찬안과 사실상 같은 내용이다. 권영길(2011)·김재연안(2012)은 노회찬안에서 이행강제금 조항만 제외한 것이며, 최원식안(2013)은 국무총리 소속 하에 차별금지정책위원회를 신설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겨 있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한국교회수호결사대 등 단체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평등기본법)은 동성애 독재법"이라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한국교회수호결사대 등 단체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평등기본법)은 동성애 독재법"이라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동성애 독재법' 철회하라", 개신교 반발에 차별금지법 좌초

여섯 차례의 입법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간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적 개신교계의 반발을 극복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차별금지법 초안에는 '성적지향'이 불합리한 차별 사유로 포함돼 있었지만,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옹호법"이라는 개신교계의 반발로 인해 결국 성적지향,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 7개 사유를 뺀 채 발의됐다. 게다가 인권위의 시정명령권과 이행강제금, 징벌적 배상제 등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까지 모두 제외돼, 초기 설계와는 다른 누더기 법안이 돼버렸다.

이후 발의된 5개의 법안은 모두 정부안이 제외시킨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불합리한 차별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매번 교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사회적 지지가 단단하지 않았던 차별금지법은 동력을 잃은 채 번번이 좌초했다. 특히 2013년 발의된 김한길·최원식 의원안은 각각 51명, 12명의 민주당 의원이 동참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개신교계의 반발로 약 2주간의 입법예고 기간 동안 무려 10만 건이 넘는 반대의견이 등록됐다. 이로 인해 김한길·최원식 의원은 발의 두 달 만에 스스로 법안을 철회하는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해야 했다. 

◇ “동성애는 죄” 설교하면 감옥 간다? 사실과 달라

개신교계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경우 동성애에 비판적인 종교적 신념까지 제한될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차별금지법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구체적인 처벌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동성애는 죄”라는 설교를 한 목회자가 감옥에 갈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의된 모든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와 관련해 종교적 신념이나 발언에 대한 처벌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실제 ‘징역 2년, 벌금 1000만원’은 차별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차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사람에게 이를 이유로 불이익을 줄 경우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직장인이 상사로부터 자신의 성적지향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며 피해구제를 요청할 경우 가해자나 해당 기업은 인권위의 시정명령 또는 법원의 손해배상 명령을 받을 뿐이다. 하지만 차별을 당한 직원이 피해구제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이후 집단따돌림, 폭언, 승진 누락, 업무 배제 등의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2년 이하의 징역 및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의 처벌이 부과될 수 있다.

자료=국가인권위원회
자료=국가인권위원회

◇ 차별금지법 7번째 도전, 민주당 입장이 관건

차별금지법의 7번째 국회 도전 전망은 예전보다 희망적이다. 사회가 점차 변화함에 따라 과거에 비해 차별금지법에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 지난 23일 인권위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000명의 응답자 중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권위에 따르면, 찬반 의견 분포는 성별, 연령, 거주지역과 관련 없이 고르게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과거 여론조사에서 찬성 의견이 60%를 넘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다만, 현재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이번 차별금지법에 동참한 의원 수는 총 10명으로 발의 요건을 겨우 충족시키는 수준이다. 이 중 민주당 의원은 단 2명. 지난 19대 국회에서 무려 63명(김한길안 51명, 최원식안 12명)이 차별금지법 발의에 참여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지지와 반대를 오가는 엇갈린 행보를 보여왔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0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16년 2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3당 대표 초청 국회기도회'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 누가 이거를 찬성하겠나”라며 “동성애법은 자연의 섭리와 하나님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는 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18대 대선에서는 “참여정부에서 추진되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19대 대선에서는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추가 입법으로 불필요한 논란은 막아야 한다”며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앞서 민주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공개 질의에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한다”이라 답하면서도 “다만, 사회적 공감대 확산, 공론화 등 다각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지는 답변이다.

한편, 장혜영 의원은 29일 기자회견에서 “21대 국회야말로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골든타임”이라며 동료 의원들의 참여를 당부했다. 21대 국회를 향한 차별금지법의 ‘6전7기’ 도전에 민주당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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