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시위대를 '폭도(thug)'라고 비난하며 군 투입 및 총격 대응을 암시하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트위터는 '폭력미화'를 이유로 해당 트윗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했으나, 페이스북은 정치인 게시물에 대한 불개입 정책을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시위대를 '폭도(thug)'라고 비난하며 군 투입 및 총격 대응을 암시하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트위터는 '폭력미화'를 이유로 해당 트윗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했으나, 페이스북은 정치인 게시물에 대한 불개입 정책을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종차별 발언으로 인한 불똥이 대표적 소셜미디어(SNS)인 페이스북으로 튀었다. 정치인의 게시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기존 정책을 지켰다가,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기업들의 광고 보이콧으로 엄청난 규모의 손실을 보게 됐기 때문. 반면, 트위터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혐오발언 논란을 비껴가게 됐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분노한 시위대를 비난하는 게시물을 올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전 “폭력배(시위대를 지칭)들이 조지 플로이드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며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군대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마지막 발언은 월터 헤들리 전 마이애미 경찰서장이 1967년 흑인 시위 당시 기자회견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인종차별주의자의 발언을 인용해 시위대에 대한 군 투입 및 총격 대응까지 암시하자 곧바로 비판 여론이 확산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해당 발언은 시위대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라며 수습에 나서야 했다.

페이스북의 연도별 광고 수입 및 기타 수입(단위: 백만 달러). 자료=스태티스타
페이스북의 연도별 광고 수입 및 기타 수입(단위: 백만 달러). 자료=스태티스타

◇ 페이스북, 트럼프 혐오발언 방치, 67조원 증발

문제는 해당 발언에 대한 두 소셜미디어의 대응이다. 트위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후 “이 트위트는 폭력 미화 행위에 관한 트위터의 운영 원칙을 위반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해당 트윗을 보이지 않게 처리했다. 반면 페이스북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작은 차이가 가져온 결과는 컸다. 트럼프 대통령의 게시물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페이스북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소비자들의 불만을 우려한 기업들도 페이스북을 통한 광고를 중단하겠다며 보이콧에 나선 것.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코카콜라, 스타벅스, 버라이즌, 노스페이스, 유니레버, 리바이스, 파타고니아, 혼다, 룰루레몬 등 소비재기업을 중심으로 페이스북 보이콧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핵심 기업들의 보이콧 선언은 페이스북의 수익 구조에 직접적인 타격을 미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페이스북의 총수입 706억9700만 달러 중 광고 수입이 696억5500만 달러로 비중이 무려 98.5%에 달했다. 결제 수수료 등 기타 수입 비중은 10억4200만 달러로 겨우 1.5%에 불과하다. 자체 암호화폐 개발 등 수익원을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페이스북의 핵심 수익원은 광고다. 

이런 상황에서 코카콜라, 스타벅스 등 광고계 큰 손들이 페이스북 철수를 선언하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게시물이 폭력을 선동하고 투표할 권리를 빼앗는다고 인정되면 누구의 말이든 상관없이 삭제할 것”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연이은 보이콧과 비판 여론으로 페이스북 주가는 지난 26일(현지시간) 하루만에 8.3%나 하락해 시가총액 기준 560억 달러(약 67조원)가 증발했다. 저커버그의 개인 재산 또한 이날 주가 급락과 함께 무려 72억 달러(약 8조6000억원)가 사라지게 됐다.

잭 도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트위터에서의 모든 정치 광고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잭 도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트위터에서의 모든 정치 광고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 트위터 “정치광고 전면 금지” VS 페이스북 “참여 안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이처럼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된 배경에는 두 거대 SNS 플랫폼의 정치인 게시물에 대한 정책 차이가 놓여있다. 트위터의 경우 지난해 10월, 트위터를 통한 선거광고 및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광고 등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잭 도시 트위터 CEO는 “사람들은 계정을 팔로우하거나 리트윗하기로 ‘선택’함으로서 정치적 메시지에 도달한다. 하지만 정치광고는 특정 대상에게 고도로 최적화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강제함으로서 ‘선택’의 가능성을 배제한다”며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페이스북은 트위터가 정치광고 중단 결정을 내리기 한 달 전인 지난해 9월 24일(현지시간), 정치인이 올린 게시물에 대한 팩트체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닉 클레그 페이스북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은 워싱턴DC에서 열린 ‘아틀란틱 페스티벌’에서 “페이스북의 역할은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만드는 것이지, 우리 스스로 정치적 참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기업이 스스로를 정치인들의 모든 발언에 대한 심판으로 임명한다면, 이를 사회 전체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의 이러한 정책은 지난해 즉흥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지난 2016년 페이스북 규정을 위반한 게시물이라 하더라도 보도가치가 있고 공익에 심대한 중요성을 지닌다면 삭제하지 않겠다는 기준을 확립한 바 있다. 정치인의 게시물을 팩트체크하지 않겠다는 선언 또한 페이스북의 오랜 게시물 관리 기준의 연장선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보도가치’나 ‘공익에 심대한 중요성’을 지닌 게시물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다른 언론이나 단체, 개인이 만들어낸 가짜뉴스를 자신의 계정에 올려도 ‘보도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는 ‘공익에 심대한 중요성’을 지난 것일까? 페이스북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시민이 판단할 사안”이라며 불개입을 선언했지만, 이는 결국 가짜뉴스와 혐오발언의 유통을 무책임하게 방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편, 닉 클레그 부사장은 28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혐오발언을 허용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리도, 이용자도 광고주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페이스북은 매달 300만개의 혐오발언 컨텐츠를 삭제하며, 이중 90%는 신고되기도 전에 삭제된다”고 강조했다. 클레그 부사장은 이어 “페이스북이 이미 의미 있는 변화를 이뤄냈지만, 향후 혐오발언 대응을 위한 노력을 두 배로 확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시민들의 자율적인 판단력을 신뢰한다는 허울 좋은 이유로 무거운 ‘심판관’의 책임을 내려놓은 페이스북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됐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촉발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뒤늦게 변화를 약속한 페이스북에 대해 미국 시민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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