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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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재포장 규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재포장 규제가 시행되면 ‘묶음 할인상품’도 금지될 것이라며, 환경부가 부처 업무도 아닌 대형마트의 가격할인 정책에 개입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 환경부는 세부 내용을 오해해 일어난 ‘논란’이라며 수 차례 해명자료를 내놨다.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닷새 동안 뜨겁게 달아오른 논란은 결국 환경부가 재포장 규제 시행 시기를 올해 7월에서 내년 1월로 미루고 세부 지침을 보완하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언론과 환경부가 재포장 규제와 가격할인의 연관성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동안, 환경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잊혀져 씁쓸함을 남긴다.

환경부가 지난 1월 28일 발표한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 관련 보도자료 중 일부. 자료=환경부
환경부가 지난 1월 28일 발표한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 관련 보도자료 중 일부. 자료=환경부

◇ 재포장 논란 핵심은 ‘묶음 할인’ 규제 여부

이번 논란의 시작은 지난 1월 29일 공포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하위법령인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부터다. 이 개정안은 불필요한 재포장을 방지하기 위해 “대규모 점포 또는 면적이 33㎡ 이상인 매장이나 제품을 제조 또는 수입하는 자는 포장되어 생산된 제품을 다시 포장하여 제조․수입․판매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환경부장관이 재포장이 불가피하다고 고시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재포장이 허용된다.

환경부는 지난 18일 업계 관계 회의에서 재포장 금지법 개정안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재포장이 금지되는 사례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설명돼있다. 이날 한국경제는 “묶음할인 세계 최초로 금지... 라면·맥주값 줄줄이 오를 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며, 재포장 금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묶음 판매는 허용되지만 묶음 ‘할인’ 판매는 금지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환경부는 19일 이틀 연속으로 해명자료를 내고 “정부는 가격 할인을 규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늘어나는 일회용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1+1, 2+1 등 끼워팔기 판촉을 하면서 불필요하게 다시 포장하는 행위를 금지하려는 것으로 가격 할인 규제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한경 보도를 반박했다. 

20일 추가 해명자료를 낸 환경부는 “이번 제도는 묶음 할인 등의 소비자 할인 혜택을 유지하면서 환경보호를 동시에 이루고자 하는 정책”이라며 “기업의 할인 판촉 과정에서 과도하고 불필요하게 다시 포장하는 행위만 금지하는 것”이 재포장 규제의 목적이라고 재차 설명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묶음 할인상품을 비닐이나 상자를 통해 전체적으로 재포장하는 경우는 금지되지만 띠지나 고리로 묶는 경우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또한 묶음 할인 판촉 안내문만 매대에 표시하고 상품을 따로 묶어두지 않는 경우, 공장에서부터 묶음형 상품으로 출시되는 경우도 허용된다. 

환경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재포장 규제 관련 가이드라인 내용 중 일부. 자료=환경부
환경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재포장 규제 관련 가이드라인 내용 중 일부. 자료=환경부

◇ 모호한 가이드라인이 재포장 논란 초래

환경부의 해명만 보면 언론이 환경부의 의도를 곡해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재포장을 하지 않는 한 묶음 할인이 여전히 가능한데도, 환경부가 재포장 금지법을 통해 부처 업무와 관련 없는 대형마트 가격할인 정책을 규제하려 했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환경부의 발표를 날짜별로 비교해보면, 환경부가 이번 논란에서 왜곡보도의 피해자이기만 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19일 해명자료 이전에 발표된 자료에는 묶음 할인을 통한 판촉 활동을 규제하려는 시도로 보일 법한 내용들이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실제 18일 발표된 가이드라인에서 환경부는 “1+1, 2+1 등과 같이 판촉(가격 할인 등)을 위해 포장한 단위 제품을 2개 이상 묶어 추가 포장하는 경우”를 재포장으로 규정했다. 가이드라인에는 2000원짜리 상품 2개를 묶어 3000원에 판매하는 가격할인 사례나, 아예 1+1으로 2000원에 판매하는 판촉사례 등이 재포장에 해당하는 경우로 소개돼있다. 또한 “판촉(가격 할인 등)을 위한 것이 아닌 경우”는 재포장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명시돼있다. 

가이드라인만 보면 환경부가 묶음 할인을 재포장의 원인으로 지목해 금지하려 했다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2000원짜리 제품 2개를 묶어 4000원에 판매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2000원짜리 2개를 묶어 3900원에 판매하는 건 위법”이라는 한국경제의 해석이 근거없는 왜곡은 아니었다는 것. 

물론 한국경제 보도에도 사실과 다른 부분은 있다. 지난 1월 환경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맥주는 재포장 허용 대상으로 분류됐음에도, 기사에서는 맥주 할인이 금지돼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내용이 보도됐다. 하지만 재포장 규제로 인해 묶음 할인이 금지될 것이라는 언론의 지적과 그에 따른 비판여론은 세심한 검토 없이 모호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환경부가 스스로 초래한 것에 가깝다. 

지난 2009년 부산역 광장에서 자원순환연대와 부산환경운동연합 등의 단체 회원들이 판촉용 포장재 줄이기(그린마일리지) 캠페인을 열고, 환경오염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북극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09년 부산역 광장에서 자원순환연대와 부산환경운동연합 등의 단체 회원들이 판촉용 포장재 줄이기(그린마일리지) 캠페인을 열고, 환경오염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북극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 재포장 논란 속 실종된 환경정책 논의

가장 큰 문제는 재포장 규제와 묶음 할인의 연관성을 두고 환경부와 언론이 진실게임을 벌이는 동안 정작 환경보호 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버렸다는 것이다. 유통·제조업체의 과도한 포장을 규제하겠다는 환경부의 정책은 기업와 소비자들의 불편을 야기할 수 있지만, 자원낭비와 환경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꾸준히 추진돼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환경부가 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전에, 묶음 할인 규제로 기업과 소비자의 편익이 줄어든다는 비판이 일면서 결국 재포장 규제 시행은 원래 계획보다 반년이나 미뤄지게 됐다. 

재포장 규제는 환경정책이면서 동시에 경제정책이기도 하다. 실제 환경부가 지난 2008년 64개 유통·제조업체와 ‘판촉용 포장재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체결한 결과, 2007년 6618톤이었던 포장재 사용량이 2009년 5842톤으로 2년간 약 780톤(약 35억원 규모) 줄어들었다. 절감된 비용 중 약 10억원은 판촉용 제품이 아닌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그린마일리지’로 지급됐다. 

재포장 규제는 이처럼 어떻게 기획하고 추진하느냐에 따라 기업과 소비자, 환경이 모두 혜택을 입는 ‘윈(win)-윈-윈 정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환경부와 언론이 세부 내용을 두고 반박을 거듭하는 동안, 재포장 규제의 실효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환경을 지키면서 기업과 소비자의 편익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돼버렸다. 

시민단체들도 이번 논란으로 인해 재포장 규제가 생산적인 논의 없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22일 성명을 내고 “향후 규제가 시행되면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포장재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계속 문제시되고 있는 쓰레기 수거 및 방치폐기물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며 “생산자는 재포장 비용이 절감되고, 소비자는 쓰레기 분리배출시간 절약되고, 지자체는 쓰레기 감량에 도움이 되는 완성상품 재포장금지 후퇴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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