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6·17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뉴시스
정부의 6·17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뉴시스

“집값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암 덩어리와도 같은 임대사업자 등록제를 폐지하는 것밖에 없다.”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해 21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다주택자의 갭투자 수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임대사업자등록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 없이는 6·17 대책도 단기적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난 17일 홈페이지를 통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임대사업자 등록제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실패한 데 있다”며 “현 정부는 임대사업자 등록제라는 엄청나게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그물로 부동산 투기라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임대사업자 등록제는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다는 문제점 이외에도 많은 효율성과 공평성 상의 문제점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적폐”라며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재산세, 취득세,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소득세에 걸친 엄청난 세제상의 특혜를 제공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공평과세의 원칙과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와 같은 세제상의 특혜는 돈의 흐름을 비생산적인 주택 임대업 쪽으로 돌림으로써 효율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빚는다”며 “시중에 돌아다니는 부동자금이 모두 이쪽으로 몰려가면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될 자금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된 임대사업자 세제 특혜

문재인 정부는 지난 6·17 대책을 포함해 총 21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과열된 주택시장을 안정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이 교수를 비롯해 시민단체들은 반복되는 부동산 대책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이 임대사업자등록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임대사업자등록제가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임대사업자에게 세제 혜택을 줘 임대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도입 취지와는 달리 다주택자의 ‘갭투자’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전월세시장 안정화 대책’, 박근혜 정부의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통해 임대사업자에게 막대한 세제 혜택이 제공되면서, 다주택자들은 임대사업자 등록만으로 막대한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주택시장 부양을 원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집값 상승 억제를 목표로 한 문재인 정부도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유지·확대했다. 2017년 8·2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양도세 중과를 면제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도 계속 적용하겠다며 ‘당근’을 제시한 정부는, 같은 해 말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지방세·소득세·양도세·건보료 감면을 확대하는 세금 혜택 토탈 패키지를 내놨다.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확대로 임대주택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98만호였던 임대주택 수는 정부의 임대사업제 세제 혜택 확대 직후인 2018년 136만2000호로 무려 38만2000호나 급증했다. 이는 2016년(20만호), 2017년(19만호)의 두배에 달하는 수치다.

문제는 시세차익을 노린 다주택자의 투기성 거래를 제한하고 임대료 상승을 억제해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애초의 취지가 무색하게,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이 다주택자의 갭투자를 오히려 장려하는 모양새가 되버렸다는 것이다.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으로 주택 보유에 따른 조세부담이 크게 줄어든 데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수백 채의 임대주택을 보유한 갭투자자들은 주택 처분에 대한 압박 없이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가 17일 홈페이지를 통해, 정부의 21번째 부동산 대책에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문제는 빠져 있다며 쓴소리를 남겼다. 사진=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가 17일 홈페이지를 통해, 정부의 21번째 부동산 대책에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문제는 빠져 있다며 쓴소리를 남겼다. 사진=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주거안정’ 대신 ‘갭투자 활성화’?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실제 정부는 지난 2018년 9·13 대책에서 임대사업자에 대한 양도세·종부세 감면 혜택을 일부 폐지한 이후, 지속적으로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을 축소해왔다. 덕분에 지난해 신규 임대주택 등록 건수는 14만6000호로 전년 대비 62%나 급감했다.

주로 법인을 활용한 부동산 투기에 초점을 맞춘 이번 6·17 대책에도 임대사업자를 타깃으로 한 대책이 포함됐다. 정부는 모든 지역에서 임대사업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해 추가적인 투기를 제한하고, 법인이 보유한 8년 장기 임대주택(조정대상지역)에 대해서도 종부세를 과세하기로 했다. 하지만 장기 임대주택에 대한 종부세는 6월 18일 이후 등록하는 임대주택에 대해 적용되며 기존 사업자에 대한 종부세 비과세 혜택은 계속 유지된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주담대 금지 방안도 기존 대출을 회수하는 등의 조치는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6·17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정부가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7일 성명을 내고 “보여주기식 땜질대책으로 부동산투기와 집값 폭등을 막을 수 없다”며 “임대사업자 등 부동산 투기꾼에 대한 대출과 세제 특혜 중단 등의 근본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구 교수 또한 “임대사업자는 정부가 설정한 게임의 규칙을 충실히 따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사람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런 게임의 규칙을 통해 주택 투기의 꽃길을 깔아준 정부에 있는 것”이라며 “주택시장에 매물이 대량으로 쏟아지고 그 결과 집값이 예전의 수준으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임대사업자들이 보유 주택을 처분하기로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하려면 그들에게 제공되던 세제상 특혜를 모두 거둬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임대사업자 혜택 축소를 핵심으로 한 부동산 대책을 곧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6·17 대책이 다주택자들이 부동산 법인을 통해 보유 중인 주택을 시장으로 끌어내려는 조치였다면, 다음 타깃은 임대사업자가 보유한 주택일 것이기 때문. 2018년을 기점으로 임대사업자에 대한 정책 기조를 '당근'에서 '채찍'으로 전환한 문재인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어떤 아이디어를 새로 제시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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