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타워 전경. 사진=뉴시스
두산타워 전경. 사진=뉴시스

경영 부실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두산그룹이 자산매각에 나선 가운데,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계열사들의 주가가 급등하거나 매각 절차가 지연되는 계열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등 웃지 못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두산그룹은 최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추가지원을 포함해 총 3조6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긴급지원받았다. 당장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만 4조2000억원 규모로, 사실상 채권단의 지원 없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 국책은행의 대규모 지원을 받은 만큼 두산그룹도 총수일가의 사재 출연과 자산매각 등을 통해 약 3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두산중공업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가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유력한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계열사의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특히, 가장 처음 매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두산솔루스의 경우, 채권단이 두산그룹의 자구안을 수용한 지난 4월 27일 3만2050원에서 6월 2일 4만3650원까지 주가가 36.2%나 수직 상승했다. 

반대로 매각에 차질이 발생하면 급등했던 주가가 하락했다. 두산솔루스 경영권 매각을 위해 지난 2일 열린 예비입찰에 잠재적 인수 후보로 꼽혔던 롯데그룹과 SKC를 비롯해 블랙스톤, 칼라일 등 글로벌 PEF들이 모두 불참하자, 주가는 이틀 만에 3만8800원으로 급락했다. 

두산솔루스 매각 지연으로 다른 계열사들이 매각설에 휘말리면서 주가가 오르는 모습도 발견된다. 두산그룹의 캐시카우(Cash Cow)로 꼽히며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던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 주가는 두산솔루스의 예비입찰 전까지 횡보세를 보였으나, 예비입찰 하루 뒤인 3일 각각 12.8%, 6.3% 급등한뒤 8일까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두 기업의 주가 상승 배경에는 중국 굴삭기 시장 회복, 미국 인프라 투자 기대감 등의 호재가 놓여 있다. 하지만 두산솔루스의 예비입찰에 주요 인수 후보가 불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두 계열사의 주가가 올랐다는 것은, 두산을 떠나야 기업가치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높아진다는 불편한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두산건설에서 시작된 부실이 그룹 전체로 전이되며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상황이 비교적 전망이 밝은 계열사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매각설에 따라 주가가 요동치고 있는 현 상황이 아니라, 두산그룹의 예상보다 매각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산솔루스뿐만 아니라, 그보다 앞서 진행된 모트롤BG 예비입찰도 전략적 투자자(SI)들의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면서 흥행에 실패했다. 

예비입찰 흥행이 저조한 원인은 두산그룹의 기대와 투자자들의 평가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두산솔루스의 지분 가치에 대해 성장성 및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반영해 약 1조~1조5000억원으로 평가하고 있는 반면, 원매자 측의 평가는 1조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정상화를 위해 자금 마련이 절실하지만 위기 상황을 이유로 계열사 지분을 헐값에 넘길 수는 없는 두산그룹의 입장과 시장의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이 채권단의 지원 규모에 비해 자산매각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룹의 미래로 평가받는 두산밥캣, 두산인프라코어 등 핵심 계열사를 지키면서 자금도 마련하려다보니, 시장의 평가보다 매각 대상 계열사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고 있다는 것.

다만 최근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골프장 클럽모우CC 매각이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다, 정부에서도 캠코를 통한 기업자산 매입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두산그룹에게도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클럽모우CC 매각주간사인 딜로이트안진이 진행한 예비입찰에 사모펀드투자운용사 및 전략적 투자자를 포함해 총 20여곳의 투자자들이 참여했다. 클럽모우CC의 매각 금액은 약 1600억원으로 추정되지만, 경쟁이 치열한 만큼 가격이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정부 또한 지난 11일 ‘제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기업의 자산을 매입할 계획을 밝혔다. 우선 2조원 규모의 캠코채 발행을 통해 기업들로부터 자산 매입 신청을 받기 시작한 뒤, 기업구조혁신펀드·민간 PEF 등 다양한 민간자본이 참여를 통해 지원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쌍용차 등 코로나19와 크게 관련이 없는 기업도 지원 대상에 포함되냐는 질문에 “코로나와 관계없이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스스로 (자산을) 팔려고 하고, 캠코나 민간과 가격이 맞으면 적극적으로 매입해 상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은 위원장의 발언을 고려할 때, 자산매각에 차질을 빚고 있는 두산도 정부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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