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전자분석업체 '23앤드미(23andME)'는 8일 O형이 코로나19에 감염될 확률이 다른 혈액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예비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23앤드미 공식 블로그 갈무리
미국 유전자분석업체 '23앤드미(23andME)'는 8일 O형이 코로나19에 감염될 확률이 다른 혈액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예비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23앤드미 공식 블로그 갈무리

혈액형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내성이 다르다는 주장이 또다시 제기됐다. 

미국 유전자분석업체 ‘23앤드미(23andMe)’는 8일(현지시간) 예비연구 결과 O형 참가자가 다른 혈액형에 비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을 확률이 9~18% 낮았다고 밝혔다. 보건의료 종사자 등 바이러스에 노출된 참여자의 경우, O형과 다른 혈액형 간의 차이가 13~26%로 더 크게 나타났다. 

반면, O형이 아닌 다른 혈액형 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Rh식 혈액형 분류에 따른 차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23앤드미는 이번 예비연구에 참여한 인원은 약 75만명이며, 혈액형 간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나이·성별·체질량지수(BMI)·인종·동반질병 등의 변수는 통제했다고 밝혔다. 

◇ 혈액형-코로나19, 기존 연구결과는?

ABO 혈액형과 코로나19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의료·연구기관에서 제기된 바 있다. 가장 처음 발표된 것은 남방과기대, 상하이교통대, 화동사범대학 등 8개 기관 공동연구팀이 지난 3월 11일 사전 논문 공개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등록한 “ABO 혈액형과 코로나19 민감성의 관계”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중국 우한 진인탄병원 환자 1775명(사망자 206명 포함), 우한 인민병원 113명, 선전시 제3인민병원 285명 등 총 3개 병원 2173명의 코로나19 확진자의 혈액형 분포를 분석한 연구팀은 O형이 다른 혈액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될 확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혈액형에 따라 코로나19 감염 이후 상태가 악화될 확률도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 6월 2일 메드아카이브에 등록된 유럽 연구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A형인 코로나19 환자가 다른 혈액형 환자들보다 인공호흡기 사용이 필요할 정도의 중증에 이를 위험이 약 50% 정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킬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 대학 분자생물학 연구소(ICMB) 등 다수의 유럽 의료·학술기관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7개 도시에서 1610명의 환자 데이터를 수집해 검토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Rh식 혈액형 분류에 따른 차이를 확인한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연구팀이 지난 4월 11일 메드아카이브에 등록한 보고서에 따르면, Rh 항원 보유 여부에 따라 코로나19 감염 확률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뉴욕장로병원 환자 1559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존 연구와 마찬가지로 A형은 코로나19 양성 판정 확률이 높은 반면 O형은 낮았다. 다만 연구팀은 Rh 항원을 보유한 Rh+ 혈액형인 경우에만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며 Rh-에서는 유의미한 통계적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3월 11일 사전 논문 공개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올라온 중국 연구팀의 보고서 중 일부. 자료=메드아카이브
지난 3월 11일 사전 논문 공개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올라온 중국 연구팀의 보고서 중 일부. 자료=메드아카이브

◇ 코로나19에 O형이 강하고 A형은 약한 이유는?

혈액형과 코로나19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결과는 다수 발표됐지만, 왜 O형만 유독 내성이 강하고 A형은 약한지는 구체적인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ABO 혈액형에 따른 코로나19 수용체의 차이가 내성의 차이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 강남대학교 무석의학원 샤오펭다이 교수는 지난 4월 유럽예방심장학저널에 기고한 논평에서 “O형은 안지오텐신전환효소(ACE) 수치가 낮고 인터루킨(IL)-6 수치가 높아 다른 혈액형보다 코로나19 내성이 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장에서 분비되는 ACE는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상승시키는 효소로, 코로나19가 인체에 침투하는 과정에서 수용체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CE 수치가 높은 고혈압 환자가 코로나19에 취약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ACE 수치가 낮다면 코로나19가 인체에 침투하는 경로가 제한되므로 감염 위험도 낮아질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염증성 사이토카인인 IL-6는 C-반응성 단백질(CRP) 수치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CRP 수치는 고혈압 치료제인 ACE 억제제 복용으로 인해 잦은 기침을 겪는 환자에게서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샤오펭다이 교수는 IL-6 수치와 ACE 억제제 간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볼 때, IL-6 수치가 높은 O형이 코로나19에 대해 더욱 강한 내성을 가질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강남대학교 무석의학원 샤오펭다이 교수가 유럽예방심장학저널이 기고한 논평 일부. 자료=유럽심장학회
중국 강남대학교 무석의학원 샤오펭다이 교수가 유럽예방심장학저널이 기고한 논평 중 혈액형에 따른 심혈관계 질환 및 코로나19에 대한 취약성 차이를 설명한 그림. 자료=유럽심장학회

◇ 아직 입증되지 않은 사전 공개 보고서, 과신은 금물

혈액형과 코로나19와 관련해서 다양한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과학적인 근거가 밝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메드아카이브는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며 반응과 평가를 살피기 위해 만들어진 학술 커뮤니티다. 즉, 메드아카이브에 등록된 연구보고서들은 동료 연구자들의 교차검증을 거쳐 학술지에 논문 형태로 정식 게재되기 전 상태라는 것. 따라서, 혈액형과 코로나19의 연관성에 대한 가설들을 학계에서 인정받은 과학적 주장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혈액형과 코로나19에 대한 연구결과 중 정식으로 학술지에 게재된 경우는 아직 없다. 메드아카이브에 보고서를 공개한 연구자들도 자신의 연구결과를 임상에 적용하기는 이르다는 경고문구를 첨부한다. 실제 지난 3월 관련 연구결과를 처음 발표한 중국 연구팀은 보고서 말미에 “이 연구를 임상에 적용하기는 이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며 “우리의 발견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반복 연구가 수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ABO 혈액형에 따른 코로나19 감염 위험 및 증상 악화 가능성의 통계적 차이가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만큼, 이를 참고해 추가적인 연구가 진행될 필요는 있다. 다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연구결과를 과신해 “나는 O형이니까 예방 조치를 소홀히 해도 괜찮다”고 방심하거나 “나는 A형이니까 감염될 수밖에 없다”며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샤오펭다이 교수의 추정 또한 아직 혈액형과 코로나19의 관계에 대한 여러 의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샤오펭다이 교수는 “ABO 혈액형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통해 코로나19 환자의 증상 정도를 예견할 수는 있지만, 이들이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하게 만드는 위험 요인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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