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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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금융그룹 통합감독법 제정을 다시 추진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일 금융그룹의 내부통제체계 및 재무건전성을 감독하기 위한 ‘금융그룹 감독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안은 금융자산 5조원 이상 복합금융그룹에 적용되며, 삼성·한화·교보·미래에셋·현대차·DB 등 6개 그룹이 감독 대상에 포함된다. 

금융당국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비(非)지주 금융그룹을 감독하기 위해 지난 2018년 7월부터 ‘금융그룹감독에 관한 모범규준’을 제정해 금융그룹감독 제도를 시범운영해왔다. 이번 입법예고는 기존 시범운영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각종 의견을 반영한 제정안을 통해 금융그룹감독 제도의 확고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다.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복합금융그룹은 금융계열사 한 곳을 대표회사로 선정한 뒤, 이를 중심으로 ▲그룹위험관리정책을 마련하고 위험관리기구를 설치·운영해야 하며 ▲법령준수, 건전경영 등을 위한 ‘금융그룹 내부통제체계’를 구축·운영해야 한다. 

아울러, 복합금융그룹은 건전성 유지를 위해 실제 손실흡수능력(적격자본)이 최소 자본기준(필요자본) 이상 유지되도록 그룹 자본비율을 관리해야 한다. 금융그룹 내 금융회사가 일정 금액 이상 내부거래(신용공여·주식취득 등)를 하려면 해당 금융사 이사회의 사전승인도 받아야 한다.

금융당국은 은행·금융지주사에 대한 경영실태평가와 마찬가지로, 비지주 금융그룹에 대한 위험관리실태평가를 2~3년마다 실시할 방침이다. 만약 평가 결과가 부실하거나 자본적정성 비율 및 재무상태 등이 기준에 미달할 경우, 금융당국은 해당 금융그룹에 대해 경영개선계획(자본확충, 위험자산 축소 등)의 제출 및 이행을 요구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상법 개정안과 함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공정경제 3법’ 중 하나로 꼽히는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이 법안은 ▲비금융계열사의 부실이 금융계열사로 전이되는 위험 ▲그룹 내 순환출자를 통한 자본의 중복이용 위험 ▲그룹 자금이 특정 분야에 편중되 재무상태가 악화되는 위험 등을 방지하겠다는 ‘재벌개혁’의 취지를 담고 있다. 

앞서 20대 국회에서는 민생당 박선숙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모두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한 만큼, 국정과제 중 하나인 금융그룹 통합감독법 처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부안에는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원안에 포함됐던 일부 조항이 빠져 있어, 규제 수준은 완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위에 따르면, 정부안에는 기존 의원안에 포함된 ▲금융사·비금융사 간 임원 겸직 및 이동 제한 ▲비금융사의 주식 취득 한도 설정, ▲금융당국의 비금융사에 대한 직접적 자료요구권 ▲대주주 주식처분명령 등이 제외됐다. 

업계에서는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이 제정될 경우 삼성그룹이 가장 곤란한 상황에 놓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민감한 조항들이 제외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 만약 비금융사 지분 보유 한도 설정 등의 조항이 포함된 상태로 정부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8.8%) 일부를 강제매각해야 한다. 

이 경우 지배구조 리스크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지만, 정부안에서 당장 지분매각을 요하는 내용이 제외되면서 삼성도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다만 향후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가 부실화하거나 삼성전자 주가가 과도하게 오를 경우 건전성 관리를 위해 지분 일부를 정리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한편, 금융위는 입법예고기간(6월 5일~7월 15일) 후 규제 및 법제 심사를 거쳐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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