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사안이 법률 적용상 논란이 많았음에도 제재가 강행됐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NH농협은행측의 주장이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펀드 판매로 논란이 된 NH농협은행에 대한 과징금이 100억원에서 20억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농협은행은 과징금 규모가 5분의 1로 줄어들었음에도 적극 소명하겠다며 반발하고 있어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회의에서 NH농협은행에 대해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이 지난 2016~2018년 파인아시아자산운용과 아람자산운용에 OEM방식으로 펀드를 주문하고, 공모펀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이를 투자자 49명 이하인 사모펀드로 쪼개서 판매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 판매사 역할 해석 두고 이견 '미래에셋방지법' 소급적용 논란도

농협은행은 “법률 적용상 논란이 많다”며 증선위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과징금이 큰 폭으로 축소됐음에도 농협은행이 반발하는 이유는 OEM 방식의 펀드 운용 과정에서 판매사의 역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OEM펀드란 자산운용 라이선스가 없는 판매사가 펀드 설계 및 운용 등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이 지난 2016년~2018년 2년간 파인아시아·아람 등 2개 자산운용사를 통해 회사채펀드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직접 투자대상 선정 및 거래조건에 관여했으며, 주기적으로 운용방법을 지시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이 같은 행위는 불법이다. OEM펀드를 허용하게 되면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은 금융사도 마음대로 펀드를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OEM펀드 운용으로 인해 처벌을 받는 것은 운용사이지 판매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는 판매사가 펀드 운용을 지시한 경우 이를 제재할 근거가 없다.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이 펀드 설계 및 운용에 관여한 만큼 단순 판매사로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증권신고서 제출 등의 공시의무는 운용사에게 있지만, 농협은행을 단순 판매사가 아니라 펀드 주선인으로 폭넓게 해석할 경우 공시의무 불이행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금융당국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실제 지난해 이번 사안과 관련해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가 2회 법령해석심의위원회가 1회 열렸지만, 모두 금감원의 농협은행 제재안을 부정하는 결론이 도출됐다. 현행법상 판매사에 대해 공시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제재를 부과하기 어렵다는 것. 증선위 정례회의에서도 금감원의 해석을 지지하는 입장과 현행법상 제재근거 부족을 지적하는 입장이 맞서며 논의가 지연된 바 있다. 

농협은행이 지적하는 또 다른 법률상의 논란은 ‘소급적용’의 문제다.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이 공모펀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해당 OEM펀드를 투자자 49인 이하의 사모펀드로 쪼개서 팔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농협은행이 판매한 펀드는 시리즈펀드(6개월 내 여러 개의 사모펀드를 설정해 사실상 동일 증권을 발행하는 것)로 분류된다.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는 ‘미래에셋방지법’이라 불리는 자본시장법 119조 8항이다. 사실상 동일한 증권을 둘 이상을 쪼개서 발행할 경우, 이를 동일한 증권으로 판단해 사모펀드라도 공모펀드에 준하는 규제를 적용한다는 것. 문제는 해당 규정이 2017년 도입돼 2018년 5월 1일부터 시행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농협은행이 OEM펀드를 판매한 기간은 시행 이전인 2016년~2018년 3월이다. 

게다가 해당 규정의 모체라 할 수 있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거래통합기준도 지난 3월 상당 수준 완화됐다. SEC는 “늘어나는 시장 수요를 만족시키고 증권사의 자금 모집 과정을 효율적·효과적으로 바꾸기 위해 증권사의 자금 모집 기준을 완화한다”며 거래통합기준을 기존 6개월에서 30일로 축소했다. 

이처럼 판매사 제재의 법적 근거 부족 및 미래에셋방지법 소급적용 논란이 불거지면서, 과징금 규모도 당초 금감원이 제시한 100억원에서 20억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OEM펀드를 쪼개서 판매한 행위는 문제가 있지만, 투자자 손실도 발생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법률 해석의 논란이 있는 제재가 부과될 경우 농협은행도 반론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최근 DLF, 라임, 디스커버리 등 각종 펀드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서 판매사 제재를 위해 농협은행을 선례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만약 농협은행에 대한 제재가 확정된다면, 최근 문제가 된 각종 부실펀드를 판매한 금융사에 대해서도 공시의무 위반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 만약 농협은행 OEM펀드 문제와 DLF, 라임, 디스커버리 등의 부실펀드 사태 간 유사성이 입증된다면, 주요 판매사들도 농협은행과 마찬가지로 제재를 부과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번 제재안은 오는 10일 금융위 정례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농협은행은 “조만간 열릴 금융위를 통해 당행의 입장을 적극 소명할 예정”이라며 금융당국의 법률 해석에 반박할 뜻을 밝혔다. 농협은행이 OEM·시리즈펀드 관련 처벌을 받은 첫 판매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될지, 아니면 금융당국의 제재안이 ‘무리수’라는 오명을 쓰게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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