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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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시장이 '홍콩보안법'이라는 악재를 만나 긴장하고 있다. 홍콩 특별지위 박탈에 따른 홍콩 증시 불안이 자칫 국내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 홍콩발 국내 ELS 손실 커질 가능성

당장 우려되는 부분은 홍콩 증시 주요 지수가 포함된 국내 ELS(주가연계증권)의 손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지난 3일 발표한 ‘홍콩 국가보안법발 미·중 분쟁 관련 국내 증권사 ELS 리스크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5월 기준 국내 증권사가 발행한 전체 ELS 중 기초자산에 홍콩H지수가 포함된 ELS 미상환잔액 비중은 55.6%에 달한다. 홍콩H지수가 급락하기 직전인 지난 2015년 4월(80%)에 비하면 상당히 감소한 수치지만, 여전히 유로스탁스50 지수 (87.1%),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 지수(79.1%)이어 3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지난 3월 코로나19에 따른 금융불안으로 인해 ELS의 기초자산이 되는 주가지수들이 급락하면서, 국내 증권사들은 대규모 마진콜 발생 및 헤지비용 증가를 겪은 바 있다. 홍콩 특별지위 박탈이 현실화돼 홍콩 주요 지수가 급락할 경우, 당시와 같은 상황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

나이스신평은 “구체적인 미국의 제재방안이 미확정인 상황이어서 홍콩H지수 등 관련 금융시장에는 아직 큰 변동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보안법의 최종 세부 내용과 미국의 추가적인 보복조치 수준에 따라 향후 홍콩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나이스신평은 이어 “지난 2016년 ELS 대규모 손실 사례를 감안하면 홍콩H지수가 현 수준보다 약 20% 낮은 7000대로 하락할 때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유로스탁스와 스탠다드앤푸어스500 지수 등 다른 기초자산의 변동성 역시 확대될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에 ELS발 증권사 유동성 위험 고조 등 관련 리스크가 재차 증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콩에 직접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국내 금융회사들도 미·중 갈등의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국내 은행권이 홍콩에 운영하고 있는 해외점포(지점·현지법인·사무소)는 11개, 증권사는 8개로 집계됐다.

특히 은행권의 해외점포 중 홍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지난해 국내 은행이 홍콩에 설립한 점포의 자산규모는 1억8260만 달러로 전체 해외점포 자산의 13.7%를 차지한다. 이는 중국(2억7400만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당기순이익은 1억491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4.6% 감소했지만, 여전히 전체 해외점포 순익의 15.1%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은행별로 현지 영업 비중이 달라 체감하는 위기감은 다르지만, 홍콩이 금융허브 역할을 상실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자료=나이스신용평가
자료=나이스신용평가

◇ 홍콩 대체할 아시아 금융허브에 서울도 후보군

반면, 일각에서는 홍콩 금융시장의 위기가 한국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아시아 금융허브의 지위가 흔들릴 경우, 서울 또한 이를 대체할 후보군에 들어갈만 하다는 것. 

키움증권 서영수 연구원은 4일 “미국이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 박탈을 추진하면서 자금의 이탈과 함께 홍콩을 대체할 도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금융경쟁력 순위를 고려해 볼 때 현재까지 싱가포르, 도쿄, 시드니 등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의 서울 역시 그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앞서 참여정부는 지난 2003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서울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한 바 있다. 실제 지난 2015년 9월에는 영국 컨설팅 그룹 지엔(Z/Yen)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가 서울의 순위가 5위까지 상승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난해 9월에는 다시 36위까지 순위가 급락해 싱가포르, 상하이, 일본 등 홍콩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아시아 도시들과 상당히 격차가 벌어졌다. 서 연구원은 “한국의 금융산업은 산업적 측면에서 육성되기 보다는 정책 수단으로 과도하게 이용돼 가계 부채 등 시장위험은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 나라가 된 반면, 은행의 건전성, 자본력 등은 가장 약한 국가로 전락해 왔다”며 “이 점이 정부가 정책적으로 한국의 주요 도시를 금융중심지로 육성하였음에도 금융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반전의 계기는 있다. 서 연구원은 “총선 이후 현 정부는 과거와 달리 민간 은행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정부 재정, 한국은행, 국책은행 자금 위주로 경기 부양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며 “이와 같은 정책 변화가 현 정부 출범 초기 구상하였던 감독 체계 개편까지 이어질 경우 국내 은행 산업의 경쟁력 제고, 나아가 국내 금융산업의 위상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뉴스로 평가할 만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서 연구원은 금융시스템 안정화 및 소비자 보호 등이 금융허브 구축의 선결조건이라며, 현 정부가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인 만큼 은행권의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연구원은 “정부 역시 은행의 공적 부담을 줄이는 대신 은행에 충당금, 자본력 확충을 요구하는 한편 ELS 규제, 나아가 소비자 보호 관련 규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시장은 이와 같은 변화에 환호하고 있다. 이례적인 은행업 주가 상승이 이를 방증한다”며 “이제는 은행의 차례이다. 은행이 이를 받아 들여 얼마나 적극적으로 부응해 구조 개편에 나설지 여부가 향후 주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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